제5장
업계 신흥 강자, 임진 그룹 회장이 모 비서와 함께 고급 호텔에서 밤을 새우다?!
그리고 상세 내용에는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까지 걸려 있었다. 유강우가 임세린의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이었다.
난 조용히 그 기사를 넘겨 버렸다.
임세린은 업계에서 갑자기 궐기한 신흥 강자이고 외모와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라 거의 모든 파파라치의 관찰 대상이었다.
난 임세린의 불륜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임세린은 지금까지 아주 잘 숨겨왔고 스캔들을 잘 파기로 소문난 언론사들도 확실하지 않은 추측을 기사로 썼었다. 이번처럼 사진까지 찍힌 빼박 스캔들은 처음이었다.
난 기사에 큰 관심이 없었고 검색창에서 박겸을 검색했다.
그리고 채팅창을 찾았을 때야 박겸이 나한테 많은 문자를 보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최근에 도착한 문자는 10분 전에 보낸 문자였다.
“너 괜찮아?”
박겸도 임세린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내가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 봐 걱정된 듯했다.
“풉!”
내가 그딴 기사를 보고 극단적인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난 채팅창에 글을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당연히 괜찮지. 오늘 토요일인데, 너 휴식날이야?”
내가 문자를 보냈지만, 박겸은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뭔가 바빠 보였다.
하지만 채팅창 박겸의 이름 아래에 글 한 줄이 나타났다: 상대방이 입력 중입니다...
그는 어떻게 날 위로할지 고민하는 게 뻔했다.
내가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박겸의 전화였다.
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바로 받았다.
“오늘 휴식날이야, 우리 집으로 와! 이번에는 세린 씨가 너무했어. 너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걱정하지 마, 난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세린이가 뭘 하든 난 신경 쓰지 않아.”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박겸은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절대 짧지 않은 결혼 생활 도중에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신경 쓰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박겸은 밝히지 않았고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다.
임세린이 전에 줬었던 40만 원 덕분에 난 택시를 타고 오후 2시에 박겸의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문을 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추재은이었다.
추재은도 어릴 적에 아주 친했었던 소꿉친구였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늘 함께 다녔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누군가가 추재은을 데려갔다. 소문에 추재은은 사실 부잣집 딸이었지만, 실수로 다른 사람과 바뀌어 지금의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고 친부모님이 데려갔다고 했다.
그 뒤로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멍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야, 주환아.”
추재은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전혀 놀라움이 없었다.
추재은의 목소리가 울리자 나는 그제야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우리가 문앞에 너무 오래 서 있는 탓인지 박겸이 집안에서 외쳤다.
“너희들 안 들어오고 뭐 해? 비록 오랜만에 만나긴 했지만, 굳이 문 앞에서 인사를 나눌 필요는 없잖아! 일단 들어와서 기다려, 이제 요리가 하나만 남았어, 이것만 끝내고 같이 밥 먹어.”
그제야 난 정신을 차렸고 추재은은 길을 비켜 주었다.
내가 들어가자, 추재은은 가볍게 문을 닫았다.
나는 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순간 몸이 떨렸다. 문을 박차고 나간 임세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숨 막힘이 다시 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추재은은 내 어두운 표정을 발견하고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 왜 그래? 문 닫는 소리가 너무 컸어?”
나는 그 말에 난감했다. 추재은이 문을 닫은 소리는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소리처럼 아주 가벼웠으니 크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난 자신의 예민한 반응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
“난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
추재은은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가 수박을 들고나왔다.
“먹어, 엄청 달아.”
난 손을 내밀어 수박을 받고 편한 곳을 찾아 앉았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추재은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나 자신도 몰랐다. 지금의 나는 사고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머리를 숙이고 수박에 집중했다.
너무 오랜만인 탓인지 우리 사이의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고 나도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박을 거의 다 먹은 다음에야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넌 어때? 잘 지냈어?”
“내 상황을 물어보기 전에 너 자신부터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추재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전등이 반사된 탓인지 눈은 반짝이고 있어서 나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나야 잘 지내지. 너도 알잖아. 내 아내는 디자인 업계의 최고 회사인 임진 그룹의 회장이야.”
난 억지웃음을 짜내며 말했다.
“거짓말하면 안 되지!”
추재은은 그 말을 듣자, 머리를 돌리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추재은의 말이 맞다!
임세린, 지금 불륜 때문에 인기 검색어에 오른 여자가 내 아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난 잘 지낼 리가 없었다.
순간, 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난 머리를 숙인 채로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난 지금 머리를 들 용기가 없었다. 심지어 오늘 이곳으로 온 이유마저 잊어 버린 채로 머릿속을 비웠다.
“다 됐다.”
분위기가 가장 어색하고 무거울 때, 박겸이 왔다.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자기가 직접 한 요리를 나르기 시작했다.
요리는 종류도 많았고 양도 푸짐했다. 분명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식사 준비가 끝나자, 어디선가 와인 한 병을 찾아 식탁 위에 놓았다.
“우리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다 같이 한잔할까? 아니다, 주환이는 술 못 마시지.”
박겸은 와인의 뚜껑을 열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와인을 도로 넣었다.
난 억지 미소를 짜냈다.
“못 마시긴 누가 못 마셔? 한 잔 정도는 괜찮아.”
사실 난 술에 취한 느낌을 알고 싶었다. 비록 전에는 술이 싫었지만,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내 상처가 가득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동의했다.
사람은 살면서 가끔 술에 취해 본 적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조금 취했다. 와인은 사실 도수가 높지 않지만, 난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 바로 흐리멍덩한 눈으로 신세 한탄하기 시작했다.
추재은과 박겸은 그저 조용히 옆에서 듣고 있었고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스트레스를 풀게 하려는 듯했다.
내가 한창 신이 나서 얘기하고 있을 때, 식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난 휴대폰 화면을 힐끔 훑어보았다.
임세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