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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대답 안 해!” “그런 거 아니야.” 난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임세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비록 임세린은 내 대답에 만족한 듯이 멱살을 놓았지만, 예전에는 달콤함만 들어있던 눈동자에는 지금 의심이 담겨 있었다. 임세린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기에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의 임세린은 날 자기 옆에 가둬두는 것으로 자신의 다소 변태적인 소유욕을 만족하려 하기 때문이다. “화내지 마요, 누나. 형이 설마 일부러 그랬겠어요?” 내가 한창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을 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유강우였다. 그는 팬티만 입은 채로 다른 방에서 걸어 나왔다. 머리가 젖어 있는 걸로 봐서는 금방 씻은 것 같았다. 임세린의 표정은 조금 밝아졌고, 유강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 소파에 버려둔 채 그냥 떠났다. 난 쓴 웃음을 지었다. ‘바랄 걸 바라야지.’ 난 조금 전에 임세린이 날 걱정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가시덤불 속에 갇힌 내 불쌍한 심장은 아직도 바라지 말아야 할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입가는 조금 올라갔고 다소 창백한 얼굴의 뒷받침 속에서 악귀 같아 모골이 송연했다. 난 지금의 내 모습이 보기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여 영혼을 잃어버린 육체를 끌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잠들었다. 난 아주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속의 나와 임세린은 예전처럼 아름답고 달콤했다.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었고 아무리 아름다운 꿈이라 해도 결국 내 것이 아니었다. “깼어?” 난 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멍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믿기 힘든 표정으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옆에 서 있는 임세린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꿈속인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건가? 난 힘껏 팔을 꼬집었고 팔에서 전해오는 고통을 느껴서야 이 모든 것이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임세린이 왜 갑자기 저런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로 나와 얘기하는 거지?’ 난 지금의 상황을 잠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기계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응.” 내 반응이 임세린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임세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바로 풀었다. 임세린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비록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난 무언가가 떠올라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임세린의 얼굴이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주환아, 네가 어제 청솔 마을로 갔다고 했고, 밤에 늦게 돌아와서 지금 난 여기 있는 거야. 네가 오라는 신호를 보내놓고 이 반응은 또 뭐야?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랬구나... 넌 아직 깨끗하게 잊지 못했구나.’ 난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네 착각이야. 강우한테 가. 난 네가 필요 없어.” 내 말은 마치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바위처럼, 순식간에 커다란 파도를 일으켰다. “한 번 더 지껄여 봐!” 임세린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분명 임세린이 원하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설마 자존심이 상한 건가?’ 맞는 것 같았다. 착각이라는 말은 불륜을 저지른 임세린한테는 아주 거슬리는 단어였다. 임세린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내 위에 올라타고 무서운 표정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네 부모님이 계시던 집은 내가 아니었으면 벌써 철거했어. 그리고 네 할머니는 내 돈으로 눈을 치료받고 계시고. 그러니까 날 자꾸 화나게 하면 네 부모님이 남긴 마지막 유품마저 사라지는 수가 있다? 혹은 100세 가까이 되시는 네 할머니가 눈이 멀어 영원히 보지 못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임세린의 잔인한 말은 끊임없이 내 귓가에서 맴돌았고, 난 자기도 모르게 몸이 가볍게 떨렸다. 내 부모님은 차 사고 때문에 돌아가셨고, 난 하룻밤 사이에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날 보살펴 준 사람은 시골에서부터 걸어서 우리 집까지 오신 할머니였다. 60세 고령에 옷 수선으로 날 대학까지 보내셨고, 매일 폐지를 주워 날 먹이고 입혔다. 그리고 할머니는 밤을 새우며 옷을 수선하셨기 때문에 눈병이 나신 거였다. 할머니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난 이제 겨우 인생의 3분의 1정도 밖에 살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절반 시간은 항상 어떻게 할머니께 보답해 드리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없었다면 난 3살 때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임세린의 도움이 없다면 할머니는 결국 눈이 멀게 될 것이고, 나까지 죽으면 할머니한테 대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바보같이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렸고 아무리 참으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난 화가 났다. 돈을 벌 수 있는 재주가 없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났고, 내 명줄을 잡고 있는 임세린한테 반항할 능력이 없어서 화가 났다. 하지만 몸을 떨며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임세린의 얼굴에는 아무런 안타까움도 없었고 오히려 잔혹함만 더 짙어졌다. “주환아, 내가 예전에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 심지어 널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었어. 하지만 넌 매정하게 날 떠났고 난 너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어. 내가 지금 이성을 잃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 난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고 마음은 울분으로 가득했다. ‘떠나? 내가 정말 떠나고 싶어서 떠난 줄 알아?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넌...’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침대에 누워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임세린은 내가 자책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듯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배에서 전해오는 고통과 허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내가 죽으면 임세린이 나에 관한 모든 것들을 지워버릴까 봐 두려웠다. 난 아직 할머니한테 보답해 드리지도 못했다. ‘이런 개보다 못한 새끼.’ 할머니를 떠올리니 무기력하던 몸에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난 절대 이렇게 쉽게 갈 수 없었고, 이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할머니를 위해 생각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난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그제야 힘이 조금 생겨 음식을 준비했다. 계란을 넣은 라면. 맛은 보통 라면 맛이고 아주 평범했지만, 나한테는 산해진미였다. 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디자인에 관한 지식을 배우려고 박겸의 번호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에 불쑥 기사 하나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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