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6장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술을 마셨고, 얘기도 한참 나눴다. 난 잠시나마 걱정과 고민을 잊을 수 있었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심지어 술은 고통을 잊게 만들 수 있으니 참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전화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전화를 받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초록색 수락 버튼을 눌렀다. 난 이러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 마음은 분명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취해서 그런 거야, 맞아, 난 취했어.’ 난 끊임없이 자기 마음에 암시를 가하며 휴대폰을 조금 멀리 밀어 임세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강주환, 너 어디야? 내가 한 말 다 잊었어?” 하지만 임세린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전해 오자 여전히 등골이 오싹했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난 역시 그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임세린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날 위협하기 때문에 난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 집.” 난 술에 취해 혀가 꼬여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듣는 사람이 대충 이해할 수는 있었다. “네가 밖으로 안 나간 지가 몇 년인데, 갑자기 어디서 친구가 생겨? 너 술 마셨어? 너 술 못 마시잖아? 난 오늘 집에서 잘 거니까 지금 당장 들어와.” 임세린은 내가 술을 마셨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을 때는 의아했지만, 바로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난 임세린의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했다. ‘유강우와 단둘만의 세상을 즐기면 되잖아? 왜 꼭 나를 괴롭히려 하는 건데?’ 난 바로 술맛이 떨어졌고 얘기 나눌 흥미도 잃었다. “주환아, 너...” 박겸도 우리 통화를 들었고 지금 한창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식은 30살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심지어 여자 친구도 없었다. 박겸은 비록 보통 남자들이 아내의 불륜을 맞닥뜨리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 상태는 임세린을 만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택은 내가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었다. 난 비틀 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서 외투를 들고 떠나려 했다.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도움 필요하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추재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난 그 말을 듣고 멍한 표정으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난 선택할 수 없어.” 그리고 바로 떠났다. 비록 걸음은 비틀거렸지만, 뒷모습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 우리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마셨고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겨우 7시였다. 난 비틀거리며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임세린이었다. 난 술에 취해 있는 상태라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 내뱉었다. “왜 강우 씨가 아니라 네가 문을 열어?” 난 임세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재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임세린은 나를 부축하여 소파에 앉히고 내 얼굴에 따뜻한 수건을 덮어 주었다. 그녀의 행동은 너무 부드러웠고 마치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소파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과음한 탓에 전혀 술을 마시지 않던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난 임세린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하여 뇌암이 발작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고 정신을 차리려 했다. 하지만 거실을 지나가는 순간, 어두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임세린을 발견했다. 이 정도로 어두운 표정은 처음이었다. 먹장구름이라는 말로는 필사적으로 분노를 참고 있는 임세린의 눈빛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추재은이 누구야!!!” 임세린의 목소리는 마치 엄동설한의 칼바람 같았고 내 몸의 절반이 얼어붙었다. 난 그제야 내 휴대폰이 그녀의 앞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어젯밤에 내 호주머니에서 꺼낸 것 같았다. 난 머뭇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와 추재은이 말 못 할 사이여서가 아니라, 나와 임세린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안 해? 그런다고 내가 모를 것 같아? 강주환, 너 정말 미쳤어? 네 마음속에는 정말 내 자리가 없는 거야?” 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고 심지어 웃고 싶었다. 가장 먼저 불륜을 저지른 주제에 대체 무슨 낯짝으로 피해자인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속에 자리가 있냐고? 당연히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심지어 미래에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는 임세린이 내 마음을 꽉 차지했지만, 지금은 절반은 비어있고 절반은 임세린이었다. 그리고 미래에는 좋았던 기억만 남을 것 같았다. 당연히 나한테 미래는 없다. 이제 곧 죽기 때문이다. 뇌암 환자는 감정 기복이 심하면 안 되기에, 임세린이 지금 하는 모든 행동은 내 죽음을 재촉할 뿐이다. 심지어 가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죽으면 임세린이 눈물을 흘릴까?’ 내가 침묵을 지키자 임세린의 분노는 점점 더 커졌고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화산은 폭발하지 않았고 그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흘겨본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 또 나갔다. 여전히 익숙한 장면이었다. 난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유강우한테 갔을 거라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임세린은 또다시 소파에 앉아 있었고 이번에는 손에 종이 몇 장을 들고 있었다. 임세린의 얼굴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나한테 던졌다. 난 임세린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강우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대체 왜 나와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설마 이 종이 때문인가?’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들고 살펴보았다. 순간, 난 표정이 굳었다. 종이 위에 쓰인 것은 추재은의 신상 정보였다. 난 믿기 힘든 표정으로 나머지 종이들도 집어 들고 한 장씩 살펴보았다. 역시 매 장마다추재은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심지어 첫 번째 페이지라고 쓰인 종이에는 추재은의 사진과 자세한 정보까지 있었다. 추재은, 여, 한정 그룹 회장 추태산의 딸, 어릴 적에 다른 아이와 바뀐 적이 있지만, 지금은 돌아왔고 추태산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 우리 회사 디자이너 박겸과 선후배 사이, 캘포니아 대학 디자인과 졸업, 강주환과는 소꿉친구 사이. “옛날 애인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 거야? 강주환, 너 참 대단하다?” 임세린은 조롱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휴대폰 켜고 누군가와의 채팅창을 열어 둔 다음,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