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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설씨 저택, 세 가족이 소파에 모여 앉아 있으니 유난히 화목해 보였다. 설연우는 금방 받은 네일아트를 감상하며 흐뭇하게 말했다. “아빠, 엄마, 새로 한 네일인데 어때요? 예쁘죠?” 설형우와 나문숙이 뽀얗고 예쁜 설연우의 손을 바라보며 자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네. 우리 딸은 뭘 하든 다 예뻐.” 기분이 좋아진 설연우가 애교를 부렸다. “아빠, 자세히 보지도 않고 예쁘다는 게 어디 있어요. 그렇게 대충 대답할래요?” 설형우가 껄껄 웃었다. “안 보긴, 자세히 봤구먼.” 하지만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인아 그 계집애가 너 반만 따라갔어도 내가 이렇게 속 태울 일은 없는데.” 설연우와 눈빛을 주고받은 나문숙이 부드럽게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요? 인아 걔도 얼마나 착한데.” “착해?” 설형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착한 아이였으면 나씨 가문에서 청혼했을 때 받아들였어야지.” 나씨 가문은 세력 있는 가문이었기에 손을 잡는다면 설씨 가문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설연우와 나문숙은 나씨 가문에서 정략결혼 제안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나 회장의 아들은 마흔 남짓한 나이에 내세울 게 별로 없을뿐더러 술 먹고 놀기를 좋아했기에 좋은 결혼 상대는 아니었다. 설연우는 이 일이 그녀에게 닥치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설형우를 바라봤다. “아빠, 언니는 진수 오빠랑...” “세달이나 연락하지 않은 거 보면 헤어진 거 아니야?” 설형우가 설연우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게다가 아빠는 네가 진수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설연우는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얼굴을 붉혔다. “두 사람도 방법 좀 생각해 봐. 인아 그 계집애 어떻게 설득할지 말이야.” 나문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그러면 인아가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인아 하나 시집보내는 걸로 설씨 가문 전체가 득을 볼 수 있는데 안 될 게 뭐야. 설마 우리 연우 시집보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지?” 이 말에 나문숙과 설연우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입을 벌리기도 전에 설형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한 명은 보내야 하니까 잘 설득해 봐.” 말이 끝나기 바쁘게 거실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설인아가 안으로 들어오자 세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설인아가 세 사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슬리퍼로 갈아신은 후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설형우가 나문숙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게 다 당신이 교육을 잘못 시켜서 그래. 내가 오냐오냐 키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설인아가 속으로 웃었다. ‘나를 오냐오냐 키웠다고? 언제?’ 어릴 적부터 설연우는 애교를 잘 부렸기에 잘못을 저질러도 설인아가 다 뒤집어썼고 욕먹고 매 맞는 것도 모자라 배를 곯기도 했다. 설인아가 갖고 싶은 건 한 번도 사준 적이 없었지만 공주처럼 큰 설연우는 모자란 게 없었다. 설형우가 설인아 외갓집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진작 집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설인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갔다. 이에 설형우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 “거기 안 서?” 나문숙이 자상한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얼른 입을 열었다. “여보, 화 좀 풀어요.” 설인아가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설형우를 바라봤다. “나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라고 할 거면 말도 꺼내지 마요.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이에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넋을 잃었다. 세 사람만 알고 있는 사실을 설인아가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었고 아까 들은 게 아닌지 의심되기도 했다. “너...” 설형우의 목소리에서 화가 잔뜩 묻어났다. “육진수랑 헤어졌는데 나씨 가문에 시집가면 어때서?” 설인아의 표정이 순간 처량해졌다. ‘그래. 나 헤어졌지.’ 헤어진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알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설연우더러 정략결혼을 하라고 하기엔 아까워 설연우에게 어떻게든 육진수를 손에 넣어 설인아와 헤어지게 하고는 자연스럽게 설인아를 나씨 가문으로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나씨 가문이 정략결혼을 제안한 것도 저번에 우연히 듣지 않았으면 아직도 까맣게 속았을 것이다. 설인아는 그녀와 설연우 사이에 한 명은 시집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설연우를 더 예뻐하는 설씨 가문에서 결국 설인아를 보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젯밤 설인아가 육진수에게 결혼하자고 문자를 보낸 것도 육진수와 결혼하면 정략결혼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었지만 결국 육진수는 나타나지 않았고 예상대로 설연우를 선택했다. 육진수는 그가 순진하고 착하다는 설연우가 설인아를 궁지로 몰아넣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제 충동적으로 하시훈에게 결혼하자고 한 것도 나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꼭 누군가와 결혼해야 한다면 그 선택권은 오로지 자기 손에 쥐고 싶었다. 설연우는 설인아가 이 결혼을 거부한다는 걸 알고 타일렀지만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다. “언니,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해. 더 실망하게 하지 말고.” 설형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설연우를 바라봤다. “역시 아빠 마음 알아주는 건 우리 연우밖에 없다니까.” 설인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잘 알아주는데 연우 보내요.” 설연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설형우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설인아. 내가 연우를 왜 나씨 가문으로 보내. 네 행실을 좀 봐봐. 이 바닥에서 너 좋게 보는 사람이 있기나 해? 나씨 가문에 시집가는 것도 복 터진 거야.” 설인아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좋게 봐달라 했어요? 복이라... 나씨 가문에 시집가는 게 복이라면 아빠가 가요.” 철썩. 설형우가 어찌나 힘껏 내리쳤는지 설인아의 머리가 그대로 돌아갔다. “여보, 그렇다고 애를 때리면 어떡해요.” 나문숙이 가식을 떨자 설인아가 비웃듯 입꼬리를 당겼다. 저렇게 티가 나는데 안타깝게도 설형우는 눈이 멀어버린 건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야 맞았고 보고도 못 본 척한다고 해야 맞았다. 설형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말만 잘 들었어도 맞을 일은 없었어. 요 며칠 나씨 가문이랑 식사나 하면서 날 잡자고.” 설인아가 빨갛게 부어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처량한 눈빛을 지었다. 이번 생에 아버지 복은 없다는 걸 진작 알아봐야 했는데 말이다. 마음을 추스른 설인아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절대 안 가요. 거절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설인아는 이 말만 남기고 계단을 올라갔다. 나문숙과 설연우는 오늘따라 고집을 부리는 설인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 못 하면 이 집에서 나가. 너 같은 딸 없는 셈 치면 돼.” 화가 난 설형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계단을 타던 설인아가 걸음을 멈추더니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이에 설연우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센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게 뭐야. 결국엔 싹싹 빌 거면서.” 설형우도 같은 생각이라 태도가 수그러들었다. “말 들으면 여전히 내 딸...” 하지만 설형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인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나도 앞으로 아버지 없는 셈 칠 테니까 연 끊는 걸로 해요.” 설인아는 넋을 잃은 세 사람을 뒤로한 채 얼른 방으로 올라갔다. “인아야.” “언니.” 나문숙과 설연우가 얼른 뒤쫓아왔지만 설인아가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인아야, 화 풀어. 이 일은 내가 너희 아버지랑 다시 잘 토론해 볼게. 일단 문 열어. 그렇게 화내면 몸에도 안 좋아.” 나문숙은 정말 설인아의 친모라도 되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설인아는 나문숙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빠르게 물건을 정리했다. 그렇게 트렁크 하나를 꽉 채우고 나서야 설인아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은 트렁크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몇 걸음 물러섰지만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기세를 봐서는 정말 집을 나가려는 것 같았다. 설연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안 돼. 이년이 이렇게 가버리면 내가 나씨 가문에 시집가야 하잖아.’ 설연우가 입을 열려는데 설인아가 그녀를 확 밀치며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나연숙과 설연우가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오는데 거실 입구에 서 있던 설형우가 호통쳤다. “나가라고 해. 지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설인아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별장 입구까지 나오는데 문 앞에 롤스로이스가 한 대 서 있는 게 보였다. ‘이 차는... 설마 그 사람이...’ 설인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운전석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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