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지영수?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것이지? 설인아는 약간 의아했다.
지난 번 깠을 때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까 봐 지영수에게 그녀의 번호를 남겨뒀었다.
즉시 베개를 내려놓은 설인아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몇 마디를 더 하고 전화를 끊은 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설씨 가문.
화려하게 장식된 거실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있었고 설연우와 나문숙은 그 아래에 있는 고급스러운 유럽풍 소파에 앉아 화려한 보석을 거울에 대보고 있었다.
예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설연우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아쿠아 마린을 들고는 나문숙에게 보여주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쿠아 마린 정말 예쁘죠? 색깔이 너무 맑아...”
나문숙은 미소를 짓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보석 팔찌를 가져와 설연우의 손목에 살며시 끼워주었다.
“이게 내 딸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보석은 조명 아래에서 더욱 고급스럽게 빛났다.
이것들은 모두 그녀가 경매에서 비싼 가격에 낙찰받은 것들로 파티에 참석하려면 이런 장신구들이 필수였다.
손목에 낀 보석 팔찌를 보며 환하게 웃은 설연우는 고개를 기울여 나문숙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엄마, 최고!”
나문숙은 설연우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두 모녀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이때 손에 휴대폰을 쥐고 밖에서 들어온 집사는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른 사람은 없음을 확인하고는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혀 말했다.
“사모님, 지씨 가문에 일이 생겼습니다.”
즉시 몸을 곧게 편 두 모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집사를 바라보았다. 나문숙이 서둘러 물었다.
“무슨 상황인데?”
설연우는 나문숙의 팔을 꽉 잡으며 긴장한 얼굴로 집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집사는 나문숙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서훈 도련님의 병이 발작했습니다.”
나문숙과 설연우는 처음에는 깜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눈빛에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나문숙이 집사를 바라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인가?”
집사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작이 꽤 심각한 것 같습니다. 집안의 물건을 거의 다 부숴버렸고 또다시 피를 원하고 있습니다.”
설씨 가문에서 오래 일한 집사는 누가 이 가문의 진짜 주인인지 잘 알고 있었고 어떤 감정을 실어 말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설연우는 너무 흥분해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설인아의 기술도 별거 아니었구나! 이렇게 하루 만에 무너지다니?!
이내 미소를 거두며 굳은 표정을 지은 나문숙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싸늘한 어조로 경고했다.
“콜록... 어떤 말은 해도 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잘 알겠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옥 반지를 가리키던 나문숙은 반지를 들어 천천히 집사 앞에 놓았다.
집사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손을 뻗어 반지를 집어 들어 손에 쥐며 얼굴에 아첨하는 미소를 지었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은 나문숙은 몸을 곧게 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손을 저었다.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해. 너에게도 안 좋을 것은 없을 거야. 이제 가서 네 할 일이나 해.”
고개를 숙인 집사는 옥 반지를 들고 자리를 떴다.
설연우는 나문숙의 팔짱을 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 왜 옥 반지를 주는 거야? 저 사람이 그렇게 비싼 반지를 받을 자격이 있어?”
하인에게 그런 값비싼 반지를 주다니,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나문숙은 테이블 위에 있던 다른 보석 장신구들을 전부 설연우에게 주며 말했다.
“딸아, 기억해. 어떤 것들은 아끼면 안 돼.”
설연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장신구들을 받았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런 이치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금 집사가 말한 것을 떠올리니 다시 마음이 들떴다.
“설인아 말로는 침 치료로 피를 원하는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서훈의 병이 다시 발작했다는 건 설인아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잖아?”
설연우는 생각만 해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년!
설인아가 그렇게 대단할 리가 없다는 걸 진작 알고 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은 단지 가식일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신 나문숙은 흐뭇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우리가 손을 쓸 필요 없을 것 같아, 본인이 알아서 실수를 저지르니.”
나문숙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냉소를 지었다.
“진짜 청난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사칭이었어... 하...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자고.”
설연우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병원에서 설인아가 거만하게 굴던 모습을 떠올리니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산 정상에 있던 년이 이제 골짜기로 떨어졌으니 당장이라도 가서 발아래로 깔아뭉개고 싶었다.
설연우가 비웃으며 말했다.
“설인아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우리도 손을 더럽힐 필요 없겠어.”
미소를 지으며 설연우를 바라본 나문숙은 손을 뻗어 설연우의 귀 뒤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겨주며 말했다.
“설인아가 어떻게 내 딸과 비교할 수 있겠어.”
설연우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감히 어떻게 나와 비교하겠어?”
설연우는 장신구를 상자에 넣은 뒤 나문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진수 오빠에게 먼저 알려야겠어. 육진수가 설인아에게 돌아갈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육진수는 오직 설연우, 그녀만의 남자여야 했다.
진수 오빠가 이 사실을 알면 과연 설인아를 어떻게 대할까? 너무 기대되었다.
나문숙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래, 가 봐.”
설연우는 장신구 상자를 안고 방으로 뛰어갔다.
...
저녁, 도로에 한정판 페라리 한 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핸들을 잡고 있는 설인아는 맑은 눈으로 앞길을 주시하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 그녀는 지서훈의 병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발작이 일어나지 않아야 했고 이렇게 빨리 재발할 리가 없었다.
이때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설인아는 지영수에게서 온 전화인 줄 알고 전화번호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설연우의 빈정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지씨 가문 도련님의 병이 또 재발했다면서?!”
눈살을 찌푸린 설인아는 설연우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으려 했다. 이때 설연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가 신의 청난이라며? 그런데 별거 아니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설인아를 계속 자극하려는 설연우는 방금 나문숙에게서 받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비웃듯 말을 이어갔다.
“아니면 청난이라는 이름도 사칭한 거야?”
설인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설연우는 점점 더 멍청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설인아의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설연우는 오히려 매우 뿌듯해하며 말했다.
“설인아, 진수 오빠에게서 어떻게 버림받을지 지켜볼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