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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다음날 허민준은 일찍이 카페에서 기다렸다. 컵 속의 커피를 한 번 또 한 번 휘저었고 주변의 손님들도 여러 번 바뀌어서야 박시원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허민준은 불쾌한 표정으로 박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9시에 오기로 해놓고 이제 오는 거야? 일부러 시간 끌며 날 놀리는 거 아니야?” 박시원은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했다. “허민준, 놀리는 거 맞아.” “뭐라고?” 허민준이 손을 들어 따귀를 때리려 했지만 박시원이 손목을 잡더니 힘껏 밀쳐 버렸다. 박시원에게 밀려 소파에 주저앉은 허민준의 눈에는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그는 눈앞의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해 보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시원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허민준, 이렇게 서두르면 송수아의 남편 자리에 못 앉아.” 허민준은 그제야 몸을 바로 세우고 그를 조용히 훑어보았다. 어떤 남자든 자기 아내의 첫사랑을 마주할 때는 똑같이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며 역겹고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는다. 또 가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입으로는 독한 말만 뱉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박시원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너무 냉정했는데 눈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느릿느릿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박시원은 마치 오늘 기분 전환하러 여기에 온 것 같았다. 그제야 그의 두 눈에 피어올랐던 분노가 완전히 사라졌다. “오늘 날 찾아온 게 커피만 마시려는 건 아닐 거잖아?” 박시원은 그제야 잔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이혼 합의서라는 큰 글자가 이렇게 눈에 들어오자 허민준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박시원을 바라보았다. “이건...” 박시원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랑 송수아 이혼하기를 바라는 거 아니었어? 나도 좋아. 두 가지만 도와주면 이혼 냉정기가 지난 후 이혼절차를 진행하면 나는 영원히 두 사람의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순간 허민준은 너무 기뻐 펄쩍 뛰어오를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송수아의 남편 자리에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눌렀다. “무슨 일이지?” 박시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첫째, 별장에 물건이 좀 있는데 정리해서 우편으로 보내줘. 주소는 나중에 줄게. 둘째, 이 이혼 합의서는 내가 이미 서명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송수아의 서명을 받아와. 그리고 이 일은 수아가 알게 해서는 안 돼.” 허민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직접 주지 않는 거지?” 박시원은 먼 곳을 바라보다가 문득 결혼 신고하던 날이 생각났다. 송수아는 구청 앞의 계단에 서서 박시원에게 정말 결혼할 의향이 있는지 여러 번 물었다.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때 박시원은 갑자기 찾아온 행복감에 정신이 혼미해져 빨리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 그녀의 이런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우연히 그녀와 허민준의 지난 일을 알게 된 박시원은 그녀와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송씨 가문은 배우자가 죽지 않는 한 이혼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혼에 관한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그는 미래에 조금 환상을 품었다. 그래서 이혼을 계속 추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이혼을 해야 한다. 설령 그녀 첫사랑의 도움을 받더라도 말이다. 허민준이 언제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텅 빈 가방을 보던 박시원은 그제야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박시원이 집에 오지 않은 지 사흘이 되었다. 송수아는 입에 맞지 않는 샌드위치를 먹고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컵을 ‘탁'하고 내려놓고는 샌드위치를 접시에 다시 던지며 한쪽에 있는 가정부를 바라보았다. “요리사가 바뀌었어요? 왜 이렇게 맛없게 만드는 거예요?” 가정부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요리사가 바뀐 게 아니라 하루 세끼를 대표님께서 직접 만드셔서 구체적인 레시피는 저희도 잘 몰라요...” 가정부는 말문을 연 듯 박시원이 5년 동안 그녀를 위해 한 일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하루 세끼를 제외하고 그녀의 의식주는 모두 박시원이 혼자 도맡았다고 했다. 가끔 출장 갈 때도 미리 이 일을 다 해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와 가정부에게 주의를 주곤 했다고 말했다. 송수아는 놀라 멍해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박시원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지 몰랐다. 그에게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식탁 위에 있는 식어버린 아침을 보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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