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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장 영웅을 실망하게 할 순 없어

이재연은 당황했다. 그녀는 멍하니 진희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성협은 딸을 잡아당겼다. “왜 아빠에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았던 거야?” “우리 집은 곽씨 일가를 건드릴 수 없어요. 그런데 얘기해서 뭐 해요.” 이재연은 입술을 짓씹다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서 헬멧을 쓰고 있는 진희원을 향해 외쳤다. “잘못했어요. 조은예 엄마, 아빠에게 사과할게요. 저 인터넷에서 조은예 편을 든 적 있어요. 본계정은 아니고 새로 만든 계정이었어요. 본계정으로는 엄두가 안 나서 말 못했어요. 아까 제 게시물 봤었죠? 누가 조은예가 낙태한 적이 있다고 해서 편들어줬었어요. 그리고 사람을 시켜 걔 일을 조사해 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조은예 편들어줘서 욕먹었어요.” 진희원은 한 손으로 헬멧을 안고 시선을 돌려 이재연을 보았다. “알겠어.” “언니는 곽씨 일가 못 이겨요.” 이재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곽씨 일가는 뒷배가 있어요!” 진희원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우연이네. 나도 뒷배가 있어.” “전 가난한 사람 싫어해요. 언니도 눈치챘죠? 전 조은예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아까 걔 엄마 우는 모습이 우리 엄마랑 비슷했어요.” 이재연은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예전에 제가 양이었을 때 팔을 다쳤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엄마는 학교까지 찾아갔어요. 사실 전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는 게 무서웠어요. 가봤자 소용없을 테니까요.” 반항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반항해서 양이 되었고 양이 된 뒤로는 세상이 온통 검게 느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소용없었다. 곽이서는 가장 위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이재연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은예를 화장실 안에 가둬두고 옷을 벗겼을 때 곽이서는 이렇게 얘기했었다. “너희처럼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애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눈을 더럽히지. 이렇게 예쁘장하게 생겨서 뭐 해? 시골에서 온 촌년인데 말이야. 영상을 찍어둬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 얘들아, 저것 봐. 쟤 입은 거. 깔깔깔깔, 설마 속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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