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치료할 수 있어요? 괜찮겠어요?
“누구신지?”
소리를 들은 남지혁이 뒤를 돌아봤다.
까만 머리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는데 딱 봐도 학생처럼 앳돼 보였고 얼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차가운 데다 아름다움도 섞여 있었고 눈가엔 눈물점이 있었는데 아마 그 두 눈이 너무 깊어서 그런지 그녀가 사람을 볼 때 짙은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
이호철이 말했다.
“남 선생, 이분은 내가 모셔 온 의사분이야…”
“말도 안 돼!”
이호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호통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또 너야?”
늦게 온 최지윤이 진희원을 훑어봤다. 그러더니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돈만 받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그리고 일부러 주위 사람들더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누가 데려왔어요? 들여보낼 때 확인도 안 하고 이렇게 마음대로 들여보내도 되는 겁니까?”
이 소리를 들은 당직 박동준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교수님, 오해예요. 이분들은 다 보호자세요. 지금 환자분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라 교수님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보호자? 환자가 얘랑 아는 사이라고? 그럼 가난한 집 사람이겠네. 무슨 경주에서 오긴. 괜히 여기까지 달려왔잖아.’
“먼저 여기 있는 이 사람들부터 정리해.”
최지윤이 도도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호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안 됩니다. 저흰 여기 있어야 해요.”
최지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찰할 때 옆에 사람 있으면 제가 불편해요. 제 말대로 못 하겠으면 저 그냥 나가봐도 될까요?”
‘정말 야근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나? 정말 아무나 다 나한테 치료받으려고 하네.’
이호철은 아까 동네에 있었을 때 이미 최지윤의 고약한 성질을 전해 들었긴 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고 보니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속에서 열불이 나고 있었다.
“의사로서 아픈 환자 그냥 저렇게 내버려둘 겁니까?”
이호철은 화를 겨우 참으며 말했다.
최지윤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보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그래서 제가 아까 제의했잖아요. 거부한 건 그쪽이에요. 제가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근데 정말 원하시면 방법이 있긴 한데.”
최지윤은 못마땅한 눈길로 진희원을 쳐다봤다.
“이분이 저한테 실수한 게 있거든요. 저도 시골에서 올라온 당신들을 난감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 애가 저한테 사과하면 바로 환자분 봐 드리죠.”
“사과하긴 개뿔!”
경주에서 산 세월이 얼만데, 항상 어디를 가도 제대로 된 대접만 받아왔던 이호철은 지금 최지윤이 진상철을 살려주려는 마음은 없고 그들을 괴롭힐 생각만 한다고 느꼈다.
그러자 최지윤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지금 그게 무슨 태도예요? 병원에서 한바탕이라도 하실 기세네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 이호철은 순간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그때 당사자인 진희원이 그를 말리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그다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열 받은 이호철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알았어요. 제발 우리 회장님 좀 살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진희원에 대한 이호철의 태도를 보고 남지혁도 그제야 그녀를 완전히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지윤은 여전히 빈정거렸다.
“설마 이 작은 계집애한테 희망을 거는 건 아니겠죠? 세상에, 얼마나 무식하면.”
“저희 최 교수님 말씀이 옳아요. 그렇게 충동적으로 벌일 일 아닙니다.”
박동준은 별다른 편견은 없었지만 한눈에 봐도 어린 진희원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눈치였다.
“환자분 상황이 좀 특이한 거 아시잖아요. 저랑 선생님도 못하는 데 이 젊은 분이 하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진희원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환자분, 처음엔 호흡이 거칠다가 점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리고 마른기침을 계속해 댔죠? 성대에 피가 고여있고 폐 쪽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는 것 같네요.”
그동안의 증상을 한 번에 다 알아맞혔다.
진희원의 말에 박동준도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