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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칠순 잔치가 끝나고 정원에 강씨 가문 사람들만 남았다. 강호석은 하루 종일 피곤했는지 방으로 가서 쉬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서혜주가 강서윤을 노려보면서 욕했다. “독한 년, 서진이가 널 친동생처럼 아끼고 어릴 때부터 감싸고 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망신을 줄 수가 있어?” “내가 망신을 줬다고요? 내가 가짜 운석을 사라고 강요하기라도 했나요?” 강서윤이 차분하게 되묻자 서혜주가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서진이는 사기당해서 가짜를 산 거잖아. 근데 넌 알고도 귀띔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기나 했어. 네가 그러고도 동생이야?” “당장 얘를 내쫓아. 우린 이런 배은망덕한 자식은 필요 없어.” 강현찬이 차갑게 명령했다. 그러자 십여 명의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강서윤을 끌어내려 했다. 강서윤은 그들을 뿌리치고는 도도하게 옷을 털었다. “내쫓을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이번에 돌아와서 강씨 가문에 머무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강서진이 놀란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서윤아, 여기 안 있으면 어디 있으려고? 엄마 아빠가 화가 나서 그런 거니까 사과만 하면 받아주실 거야. 길거리에서 노숙이나 하는 건 너무 짠하잖아. 언니가 마음 아프단 말이야...” “미안한데 나 빌라 단지를 샀어. 스무 동이나 돼서 매일 월세 받느라 바빠.” 강서윤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허리춤에서 열쇠 수백 개를 꺼내 흔들며 가버렸다. 차가운 뒷모습이 거만하고 당당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열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모두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강서윤을 쳐다보았다. ‘강서윤이 저렇게 많은 집을 샀다고? 무슨 돈으로? 양녀 따위가 무슨 돈이 저렇게 많아?’ 강서진의 옆을 지나갈 때 강서윤은 갑자기 멈춰 서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내 모든 걸 되찾으려고 돌아온 거니까 각오해. 전에 나한테 상처를 줬던 사람들, 지옥을 제대로 맛보게 될 거야.”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요염한 식인화처럼 치명적이었다. 강서진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 ‘너무 무서워. 늘 순종적이었던 강서윤이 언제 이렇게 무섭게 변했지?’ 그녀는 또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택을 나갔어.] 강서윤은 강씨 저택을 나온 다음 헬멧을 쓰고 바이크를 타고 떠났다. 아직은 강씨 저택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었다. 설령 돌아간다고 해도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가 ‘양녀’인 그녀를 학대할 것이다. 그녀는 복수하러 온 것이지, 그들에게 이용당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날은 북을 치고 만인이 환영하는 날이어야 했다. 세련된 바이크가 교외 빌라 단지로 질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강서윤은 바이크를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이 공손하면서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오신다고 왜 미리 연락을 안 주셨어요? 그럼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요. 위에서 5성급 빌라를 준비해줬거든요...” “필요 없어.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귀국한 거라 거기서 지낼 생각 없어.” 강서윤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하지만...” “됐어. 개인적인 일을 다 처리한 다음에 연락할게. 만약 정말 할 일이 없으면 2015년 밸런타인데이에 주한 호텔에 있었던 사람들, 특히 꼭대기 층에 있었던 모든 남자들을 조사해줘.” 그날 강서윤은 주한 호텔에서 순결을 잃었고 그녀의 인생은 그날 밤부터 망가졌다. 그 남자를 찾아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남두식이 즉시 명령을 받았다. 강서윤은 전화를 끊고 계속 운전했다.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데 정신이 팔려 번호판 없는 밴이 쫓아오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번화가를 벗어나 빌라 단지로 가는 길은 폭 8m의 큰 도로였지만 빌라 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니지 않아 매우 한적했고 도로 양쪽은 산이었다. 강서윤이 바이크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웅 하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밴이 뒤에서 들이박았다. 쾅. 바이크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고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지려 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산비탈 아래로 계속 굴러떨어졌다. 바이크는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차에서 내린 밴 운전자는 수십 미터나 되는 험준한 비탈을 내려다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서진 씨, 강서윤이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당장 찾아. 살아있으면 산 채로 데려오고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찾아내.” ... 산 아래로 떨어진 강서윤은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그런데 그때 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쫓아오고 있었다. 평소였더라면 당장 상대를 혼내줬겠지만 지금은 다친 상태라 움직이기 힘들었다. 강서윤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덤불 속에 덮인 동굴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 동굴 안이 유난히 조용했다. 그녀는 그제야 벽에 기대어 숨을 돌렸다. “엄마, 엄마.” 갑자기 어디선가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서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부드럽고 흙투성이인 몸이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고개를 숙여 보니 둥글고 하얀 얼굴의 어린아이가 맑은 두 눈을 깜빡이며 강서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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