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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만약 꼭 한 사람을 골라 결혼을 해야한다면 조건이 좋은 사람을 고르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돈 때문에 걱정할 일도 없고 못생기고 근자감만 넘치는 남자를 마주할 필요도 없으니까 전 좋다고 생각해요.” 주민환은 조용히 정지연을 바라봤다. 솔직한 것에 칭찬을 해야 하나 싶었다. “꽤 솔직하군요.” 정지연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민환 씨는 엘리트 인사고, 통찰력도 뛰어나시니 수작을 부려도 숨길 수는 없겠죠. 저도 힘들게 가면 쓰고 살고 싶지도 않고요. 어떤 건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나을 때도 있는 법이죠.” 주민환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신도 모자라진 않아요.” 정지연은 그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있는 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왕 생각이 통했으니 집안일은 서로 분담하도록 하죠. 식사는 제가 준비했으니까 당신이 설거지해요. 너무하지는 않죠?” 말을 마친 그녀는 주민환이 동의를 하든말든 베란다로 나가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주민환은 테이블과 그녀 사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감히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정지연이 처음이었다. “청소하는 이모님이 방문할 겁니다.” “아주 사소한 일인데, 그것도 못 해요?” 청량한 목소리로 말을 한 여자는 주민환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주민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남자가 되어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미션을 준 뒤 정지연은 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록 쨍그랑하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려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굳건히 자리에 앉아 손에 들린 책에 집중했다. 정지연이 책을 6페이지쯤 넘겼을 때, 주방에서 나온 주민환은 거실 협탁 서랍에 있는 구급상자를 꺼냈다. “도와줄까요?” 정지연이 예의상 물었다. 정작 시선 한 자락 주지 않은 채였다. 주민환의 안색이 더더욱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말했다. “이리 와요.” 그녀는 그제야 책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다가가 상처를 흘깃 봤다. 꽤 깊기도 했다. 알코올을 가져온 그녀는 빠르게 상처를 처치했다. “설거지가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 꼴이 돼요? 병원 가서 꿰맬까요?” 정지연이 덤덤하게 물었다. 그때, 주민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지연도 계속 더 물을 생각 없어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다음에는 장갑 끼고 해요.” 그런 정지연을 흘깃 쳐다본 주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 서재에서 10시가 넘도록 일을 한 그는 안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안방과 드레스 룸, 메인 화장실에 그의 것이 아닌 여성용 생필품이 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안 봐도 여사님이 준비한 것일 게 뻔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한 주민환은 잠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욕시에서 나온 그는 정지연이 안방 베란다 앞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소리는 아주 조용하고 담담했다. “병원 쪽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회장님한테 남은 날이 얼마 없는 거 알고 있어요.” “네, 저도 저녁에서야 소식을 들었어요. 다들 상의를 해서 그동안에 서진하와 문유설의 약혼을 진행할 생각이래요. 문유설의 화제성도 유지하고 좋은 일로 호감도도 쌓을 겸 해서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양연수의 말투에는 슬픔과 무력감이 묻어있었지만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지연아…. 너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네 아빠 요즘 경한 쪽이랑 가깝게 지내는데, 경한네 둘째 아들이 돈도 있고 지위도 있어서 너랑 천생연분이라고….” “그래서 저를 설득하라고 엄마를 보낸 거군요, 맞아요?” 양연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지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지연아…. 엄마는 안목이 좋은 사람이 아니야. 만약 평생의 중요한 결혼이라면 뭐가 됐든 적어도 너한테 마음이 있어야겠지. 그리고 너를 예뻐해야겠지. 네가 선택할 수 있게 하라고 말했어. 너랑 서진하가 얼마나 잘 어울렸는데, 다들….” 양연수의 말은 별다른 설득력이 없었다. 정지연도 그녀가 잘 지내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지연은 잠시 침묵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앞으로는 제 일로 난감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결혼했어요.” “결혼? 너 결혼했니? 대체 언제?” 전화 너머로 양연수는 깜짝 놀란 듯했다. “며칠 전에 혼인신고 마쳤어요. 바빠서 미처 말씀 못 드렸고요.”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니…?” 양연수는 한참이나 침묵하고 있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할아버지 때문이니? 아니면… 서진하대문에? 너도 참,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설령 결혼을 한다고 해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해야….” 낮게 웃는 정지연의 말투에는 냉담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는 아니에요. 알고 지낸 지 꽤 됐고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결혼했어요. 괜찮은 사람이고 열심히 하고, 외모도 괜찮고 저한테도 잘해줘요. 이미 이사해서 같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하지만 지연아….” “엄마, 걱정마요. 게다가 저랑 서진하는 원래도 함께 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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