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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앙연수는 조금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으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았다. “너는 참, 늘 좋은 것만 얘기해.” “결혼한 것도 나쁘지 않지. 괜히 남들이 노리는 것보다 낫지. 그 경한의 둘째 아들은 재혼한 사람이었어. 게다가 그 외모며 인성은…. 결혼했다니 다행이다. 뭐가 됐든 너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아니면 너무 힘들어.” “엄마….” 정지연은 사실 어떻게 양연수를 마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 만약 그녀가 착각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문유설의 신분은 바뀔 리가 없었다. 양연수는 비록 문유안의 아내이긴 하지만 재벌가에 시집온 신데렐라였다. 문유안은 양연수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되레 자신보다 몇 살이나 많은 가수 김사라를 사랑하고 있었다. 문씨 가문의 극심한 반대에 결혼을 할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연인 관계만 유지하고 있었다. 문기훈과 문유설 남매가 바로 문유안과 김사라의 아이였다. 당시 김사라는 문유설을 낳은 뒤 곧바로 문유안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 키우라고 전화를 했었다. 다시 문유안은 출장 중인 탓에 하는 수 없이 양연수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양연수는 잘못된 정보를 받고 병원에 갔고, 마침 병원 밖 벤치에 놓인 정지연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안아 온 것이었다. 양연수는 문씨 가문에서 그다지 잘 지내지는 못했다. 문유안은 그녀에게 툭하면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고 나중에 아이를 잘못 데려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양연수의 처지는 점점 더 힘겨워졌으며 문유안의 아이인 문기한마저도 따라서 고초를 겪었다. “됐어, 이제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지면 데려와서 엄마한테 보여줘.” 양연수가 말했다. “네, 요 며칠 준비해 볼게요. 참, 며칠 전 파티에서 안효진의 사촌 동생을 봤는데 잘 못 지내고 있나요?” 따지고 보면 안효진은 양연수의 사촌 조카이기도 했다. “아, 그래. 그쪽도 좀 복잡한데 나중에 내가 얘기해줄게.” “네, 일찍 쉬세요.” …… 밤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초봄의 밤에는 더더욱 추웠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정지연은 아래로 쭉 펼쳐진 번화한 야경을 바라봤다.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울적함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등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간 정지연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주민환을 발견했다. 그 서류의 표지에 결혼 협의서라고 적힌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정지연이 며칠 전에 사인을 한 그 파일인 듯싶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지연이 별안간 입을 열었다. “주민환 씨, 이야기 좀 할까요?” “무슨 이야기요?” 고개를 숙인 남자의 표정은 담담했다. “주민환 씨에게 제안할 것이 있을지도요?” 주민환은 가늘고 긴 예쁜 손으로 서류를 한 페이지 넘겼다. “저희 사정이 이러니 모든 과정은 간략화하도록 하죠. 제 쪽에서는 예물 안 할 테니까 그쪽에서도 예단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날짜 잡아서 제 가족이랑 식사 한번 하시면 제 쪽의 절차는 끝이 났습니다. 주민환 씨 쪽에 필요한 식순 있으면 전력으로 협조하죠. 어떤가요?” “그렇게 하시죠.” 검지와 엄지를 맞대어 오케이 사인을 보낸 정지연이 일어나 옷을 챙겨 씻으러 가려는데 주민환이 들고 있던 서류를 그녀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예민하신 분입니다. 언제든 와서 방 검사할 수도 있어요. 귀찮아지고 싶지 않으면 이 물건은 처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주민환의 말을 듣자 정지연은 그제야 확실히 자신이 너무 무방비하게 서류를 대충 던져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귀찮은 건 싫어요. 문씨 가문과 서 씨 가문 쪽은 당신이 해결해요.” 그날 정지연과 그 남녀의 대화와 방금 전의 통화를 떠올린 주민환은 어렵지 않게 상황을 유추해 냈다. 순간 멈칫한 정지연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잘 처리할게요. 다만 자르기 쉽지 않은 것들은 있는 법이죠. 하지만 절대로 당신에게 영향이 가지 않게 하겠다고 장담하죠.” 주민환은 조용히 시선을 거둔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량하고 올곧은 몸은 정지연의 앞을 지나더니 한 마디를 남겼다. “그 말 지키길 바랍니다. 앞으로 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라요, 정 교수.” 정지연은 그 계약서를 거둔 뒤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안방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침대에 베개 하나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재에서 자는 건가? 정지연은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랑 한 침대에서 한 이불 덮고 자는 것은 확실히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주민환은 인식이 꽤 뛰어난 듯싶었다. 이런 사람과 사는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겠지? …… 정지연은 생활 패턴이 굉장히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일부러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씻은 그녀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내려가 한 시간 동안 러닝을 뛰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어제는 시간이 부족해 구경할 새가 없었다. 월아 센트는 Z시의 부촌으로 치안이 좋고 각종 인프라들이 대부분 갖춰 있는 데다 사람이 많지 않고 공기도 좋았다. 트랙은 강변을 따라 쭉 펼쳐져 있었고 한 바퀴를 돌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그녀는 아침 식사를 테이블에 올린 뒤 주민환을 깨울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가 손을 들기도 전에 별안간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바람에 그녀의 손은 그대로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더 미칠 노릇은 남자의 잠옷이 조금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데다 검은 머리칼은 조금 젖어 있기도 했다. 주민환 특유의 시니컬하고 청량한 향기가 밀려들었고, 정지연의 손끝이 그의 가슴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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