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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진윤비가 불현듯 물었다. “강서우 씨, 혹시 우리 그룹에 관심 있어요? 관심 있다면 제가 얼마든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서우는 단호히 거절했다. “관심 없어요.” 점차 사라져 가는 실루엣을 바라보며 진윤비의 눈에는 어딘가 미묘한 빛이 스쳐 갔다. 감탄처럼 보이기도, 설렘처럼 보이기도 했다. ... 강서우는 해야 할 일 하나를 또 처리해 낸 뒤, 호텔에서 반나절 휴식하고 나서 곧장 연결된 별장으로 돌아갔다. 정원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유송아가 강서우의 옷을 걸치고, 고급 양털 숄까지 두른 채 마치 여주인처럼 도우미들에게 지시하며 잘 가꿔 놓은 꽃들을 몽땅 뽑아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강서우를 발견하자, 유송아는 약간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였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도발해 보기도 전에 강서우가 스스로 돌아왔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는 듯했다. 그녀는 가식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언니, 여긴 왜 왔어요? 언니는 호텔에서 지낼 거라, 오빠가 저한테 여길 제집처럼 생각하라고 했거든요.” 유송아는 그 말과 함께 입을 가린 채 콜록콜록 기침을 흉내 냈다. “제가 체질이 이런 탓에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 덕에 민재 오빠가 밤늦게까지 보살펴 주느라 힘들었죠. 언니, 저를 미워하는 거 아니죠?” 강서우는 시들어가는 꽃들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미래 그룹에서 손을 뗀 뒤, 박민재는 심심해할 강서우를 위해 온갖 희귀한 꽃씨들을 구해 선물해 주었었다. 특히 몇몇 아주 까다로운 종은 강서우가 애지중지 돌봐 온 끝에 간신히 살아났고, 꽃이 핀 날에는 사진까지 찍어 박민재에게 결혼식 때 부케로 쓰겠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 꽃들은 진흙 속에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었다. “잘 뽑았네요. 계속 해요.” 강서우는 담담히 시선을 거두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유송아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분노로 펄펄 뛸 걸 예상했는데 강서우가 지나치게 조용하자 이상하다는 듯했다. 2층 침실에 들어가자, 오랫동안 지내 온 공간인 데도 불구하고 텅 빈 느낌을 주었다. 강서우와 박민재는 같은 집에 살아도 각방을 썼다. 하지만 강서우의 방 한쪽에는 언제나 두 벌씩 짝을 맞춘 물건들이 있었다. 칫솔, 수건, 인형, 잠옷, 베개... 강서우는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꺼내 방 안 물건들을 모조리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 뒤 짐을 넣은 트렁크를 들고 오가며 다섯 번쯤 내려갔지만, 모두 정원에서 꽃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했는지 강서우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방에 올라왔을 때, 때마침 박민재가 차에서 내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서둘러 거실로 뛰어 들어가 2층으로 곧장 올라갔다. 강서우는 보지 못한 듯했다. 강서우가 복도를 지나칠 때 박민재의 방 안에서 유송아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저 그냥 갈게요. 꽃들이... 콜록콜록...” “바보야, 꽃이야 다시 심으면 그만이지. 네 몸이 우선이야. 울지 마. 너 울면 꼬질꼬질해진단 말이야.” 부드럽고 다정한 박민재의 위로가 들려왔다. 그 말들이 강서우의 가슴을 바늘로 후벼파듯 아프게 찔렀다. 강서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트렁크에 마지막 물건을 집어넣었다. 트렁크를 닫는 순간 문이 열렸다. “사랑아, 너...” 박민재는 텅 빈 옷장과 서랍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물건들 전부 어디 갔어?” 강서우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어딘지 모르게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낡은 걸 버리고 새 걸로 바꾸려고, 안 돼?” 박민재는 잠시 말이 막혔다. 뭔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다음 주에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으니 별문제 없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자신이 부탁했던 대로 강서우가 집에 와 유송아를 챙겨 주고 있으니, 어제의 분노도 꽤 수그러든 듯 보였다. 그는 마음속의 찝찝함을 누르고 자연스럽게 다가와 강서우의 머리를 습관적으로 쓰다듬었다. “요즘 기분 상한 거 알아. 나가서 쇼핑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것도 좋겠어. 내가 성 비서한테 말해서 송아가 지낼 거처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는 무조건 나갈 거야. 그때 내 방에 있는 물건들도 전부 새로 바꿔줘, 괜찮지?” 강서우는 속으로 한숨을 깊게 쉬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결혼하고 나서도 송아를 계속 그렇게 돌봐 줄 거야?” 그녀가 스스로 결혼을 언급하자, 박민재는 왠지 더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미소가 서렸다. “질투하지 말고, 투정 부리지도 마. 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응.” 강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질투 하지 않을 테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을 것이다. 강서우는 호텔로 돌아갈 틈도 없었다. 갑자기 본가에서 전화가 와서 박민재와 함께 가족 만찬에 참석하라는 통보가 떨어진 것이다. 미래 그룹이 막 발을 뻗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박민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박씨 일가에게 인정을 받으며 그 위치가 날로 올라갔다. 과거에는 아들 취급도 안 했던 박민재 아버지가 지금은 집안 최고의 인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강서우에게 있어서 박씨 식구들의 모임이란 늘 불편한 자리에 불과했다. 그들은 강서우가 어느 집안 출신인지 알 리가 없었고, 그저 떠도는 고아쯤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저 사실 좀 긴장돼요. 할아버지랑 아버님, 어머님이 저를 싫어하면 어쩌죠?” 보조석에 앉은 유송아가 붉어진 얼굴로 박민재를 바라봤다. 본가에 갈 때마다 박민재는 비서 없이 직접 운전했다. 그는 유송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뒷자리에 앉은 강서우를 룸미러로 바라본 뒤 입술을 꾹 다물었다. ‘또 삐졌네. 조수석에도 앉지 않고. 송아를 본가에 데려가는 게 뭐 어때서? 둘만 가고 송아 혼자 집에 둘 수는 없잖아. 더구나 송아는 환자인데.’ 차 안 공기는 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하지만 유송아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끔 고개를 돌려 강서우에게 말을 걸다가 대답이 없으면 애처로운 표정으로 박민재에게 애교를 부렸다. 강서우는 더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냥 눈을 감고 쉬기로 했다. 약 40분의 이동 후, 강서우가 잠깐 잠이 들었던 건지 차에서 내릴 때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그랬어. 여긴 내 집이야. 괜히 예민하게 굴지 마.” 낮게 깔린 꾸중이 머리 위로 들려왔다. 올려다보니 박민재가 어딘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강서우가 세상의 이목에서 물러난 뒤로, 박민재는 공식 석상에 그녀를 거의 데려가지 않았다. 강서우는 그걸 자신에 대한 배려라고 여겼는데, 혹시 그녀의 출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도련님, 오셨어요. 근데 이분은...?” 집사가 달려 나와 정중히 인사하더니 강서우와 유송아를 번갈아 보며 약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저 민재 오빠 친구예요. 잠시 신세 지게 됐어요.” 유송아는 싹싹하게 인사한 뒤 자연스레 박민재의 팔을 잡았다. 집사는 금방 사정을 알아챈 듯, 강서우 쪽을 동정 어린 눈길로 살펴보고는 몸을 굽혀 길을 안내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은 서재에, 어머님은 거실에 계십니다.” 웅장하고 호화로운 대저택을 바라보며 유송아는 감격한 듯 눈가가 붉어졌다. ‘언젠가는 이 모든 걸 내 것으로 만들 거야..’ “언니, 어서 들어가요. 다들 기다리시잖아요.” 유송아는 그렇게 말하며 박민재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 안에서 보여주던 불안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강서우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당장 돌아서고 싶었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박민재의 할아버지 박일성은 그녀에게 비교적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다. 몸 상태가 나쁘다고 들었는데 괜히 여기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힌 뒤 조금 늦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거실 쪽에서 박민재 어머니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민재는 참 재주가 좋네. 전에는 고아를 데려다가 키우더니, 이젠 개나 소나 다 집안에 들이는 거야? 우리 집안이 보호소라도 되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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