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9장
”그리고 엄마가 금정에 있는데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내가 코스 짜 줬어. 아마 기분 좀 나아질 거야.”
“날 봐서라도 나중에 엄마 만나면 너무 충돌하지 말고, 응?”
“그래, 그럼.”
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은아에게 물었다.
“아, 당신 뭐 잊은 거 없어?”
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
“뭔데?”
“사흘 뒤면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우리 이번 참에 혼인신고 다시 할까?”
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굴이 볼그레지며 허둥지둥 영상통화를 끊었다.
...
오후 3시, 페낭 종합병원 VIP 병동.
양 씨 가문 노부인은 한참 전에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지금 병상에 기대어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깊고 날카로운 주름이 움푹 패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화를 내기는커녕 그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 주위로 살벌한 기운이 자욱이 맴돌았다.
방에 모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 노부인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노부인이 뭐라도 얼른 생각을 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노부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한참이 지나 양호남이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침묵을 깨고 나왔다.
하현이 내건 조건들을 노부인이 들어줄까 봐 양호남은 마음 가득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현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자신의 다리도 부러질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은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맞아요. 할머니는 우리 양 씨 가문 기둥이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할머니가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그리고 우리한테 지시를 내려주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싸울 수가 있어요.”
양신이가 얼얼한 얼굴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
“우리 양 씨 가문은 기개가 있는 집안이에요. 남양 3대 가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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