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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장

소만리에게 다가오던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정교한 이목구비가 늠름한 자태와 어우러져 서늘한 아우라를 뿜으며 그녀에게 다가섰다.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기묵비가 초요의 사진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았다. 기묵비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소만리는 전혀 이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다만 지금 기묵비가 이곳에 나타난 것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기모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만리는 점점 자초지종을 깨달았다. 기모진은 한 시간 전에 처리할 일이 있다며 떠났었다. 그 처리할 일이라는 것이 알고 보니 기묵비를 보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몇 달 전 일을 돌이켜 보자면 기묵비는 절망에 빠져 사형을 각오하고 항소할 기회도 포기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소만리와 기모진의 설득으로 그는 항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항소했고 더 이상 절망에 빠져 있지 않고 생을 택했다. 이후 그 일은 묵묵히 진행되었고 소만리와 기모진 외에는 기묵비의 최종 판결이 20년형으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면회실에서 기묵비가 소만리와 기모진에게 당부한 것은 비밀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기묵비는 초요의 기억 속에서 죄를 저지른 못난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어떤 고민이나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고 진심으로 남사택이 초요와 원만한 결과를 얻길 바랐다. 그리고 기묵비는 영원히 초요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했다. 20년 후에 형기가 만료되더라도 그는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 갑자기 남사택과 초요가 뜻하지 않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모진도 기묵비에게는 이 일을 알릴 생각이 없었으나 기묵비가 TV에서 뉴스를 보고 교도관에게 연락을 부탁한 것이었다. 보석으로 풀려난 기묵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밖에 없었다. 경찰들은 지금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만리, 이리 와.” 기모진이 문 앞에 서서 소만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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