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도윤이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뒤를 돌았다. 그는 꽉 끼는 짧은 데님 바지에 하이힐을 신은 키가 큰 예쁜 여자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두 손을 엉덩이에 대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도윤을 째려보았다. “이도윤, 너는 5천 5백만원짜리 명품을 살 수 있으면서 학생회에서 주는 학생 보조금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내년에는 학생 보조금에 널 포함시키지 않겠어!” 그 여자가 도윤에게 차갑게 말했다. “미연아, 도윤이는 어린 여자애 생명을 구해준 보상으로 그 돈을 받은 거야! 그 여자애 부모님이 도윤이의 선의에 보답하고자 쇼퍼스 카드를 주셨대. 왜 도윤이 보조금을 취소하려고 그래? 네가 학생 회장이라서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 하는 거야?” 학생 회장이 아무 말도 못하고 태경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이게 대체 너랑 무슨 상관이니? 도윤이 학생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다 학생회 덕분인 걸 모르니? 우리가 도윤이의 보조금을 위해 애썼던 이유는 그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도윤이 직접 5천 5백만원이나 하는 에르메스 가방을 샀어! 넌 오늘 학교에 쫙 퍼진 소문을 못 들었니?” “네 행동 때문에 학생회가 아주 심각한 피해를 입었어! 이 행동만으로도 네 보조금을 취소할 이유는 충분해!” 미연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도윤을 째려보았다. 어젯밤 나래의 라이브 방송 때문에 모든 사람이 에르메스 가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더욱이 학생회장인 미연은 총장이 학교에서 가장 총애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미연은 아주 좋은 집안 출신이었고 그녀가 하는 일도 매우 잘 해냈다. 그녀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처리할 수 있었고 학생회장이었기 때문에 학교의 거의 모든 학과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다른 학과의 강사들과 교수들도 모두 미연과 아주 친했다. 그녀는 리더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도윤이처럼 돈이나 힘이 없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의 다른 학생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연에게 공짜 노동을 해주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미연은 도윤이 항상 매우 순종적이고 그녀가 부탁하는 일은 뭐든지 기꺼이 한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것이 그녀가 도윤이 매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이유였다. 이것이 태경이 미연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이도윤,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 좀 해보지 그래?” 미연이 도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그는 더 이상 학생회에서 주는 보조금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미연이 그를 깔보긴 해도 과거에 받았던 보조금들은 다 그녀의 노력 덕분이었다. 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좋아. 네가 물어봤으니, 네가 날 위해 뭐 좀 해준다면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해줄게. 만약 잘 해결하면, 학생회의 명성에 해를 끼친 것도 용서해 줄게!” 미연은 도윤이 가방을 사는데 쇼퍼스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욕하고 바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었다. 미연은 그 생각을 하면 화가 차올랐다. 이 거지는 어떻게 그렇게 운이 좋을 수 있었을까? 왜 그 사람은 도윤에게 그런 식으로 유니버설 글로벌 슈프림 쇼퍼스 카드를 줬지? 게다가 심지어 도윤은 생일 선물로 5천 5백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을 다른 사람에게 줘 버렸다. 5천 5백만원이라니! 만약 도윤이 그 가방을 그녀에게 줬다면, 그녀는 너무 너무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윤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미연은 협상카드로 보조금을 이용해서 그에게 교훈을 주기로 결심했다. 저 바보! “내가 널 위해 뭘 해주길 원하는데?” 도윤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아주 간단해. 다음주에 학생회에서 큰 행사를 주최할 건데 거기에 청소할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네가 강당 청소를 해줬음 좋겠어! 그렇게 해주면, 내년에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계속 도와줄게. 내가 널 보살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 너 오늘 수업은 빠져야겠어. 내가 미리 널 위해 사유서도 준비해 놨어!” 미연이 가짜 사유서를 도윤에게 던지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돌아서서 하이힐을 신고 걸어갔다. “젠장! 저 여자 완전 깡패야!” 태경이 즉시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도윤의 기숙사 친구인 재민도 이때 너무 화가 났다. “걱정 마, 도윤아. 난 네가 강당 청소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너 강당이 얼마나 큰지 아니? 어떻게 도윤이 혼자서 행사장 청소를 하는게 가능할 수 있어? 그냥 수업에나 가자.” 재민이 도윤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럼 도윤이 보조금은 어떡하고?” 도윤의 기숙사 친구들은 그가 걱정되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태경이 박수를 쳤다. “좋아! 우리도 같이 강당에 가서 도윤이 행사장 청소하는 걸 돕는 건 어때? 같이 하면 훨씬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도윤의 친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사실 도윤이 지난 3년간 학교에서 그렇게 많은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가난해도 형제라 부를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들은 도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형제들이었다. 그래서 도윤은 그들이 그와 함께 벌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솔직히 도윤은 그가 사실은 재벌 2세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정체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면 그들의 우정이 끝이 날까 두려웠다. 도윤은 그들의 우정과 배려가 진정한 재산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려. 나 혼자 할게. 혼자 강당 청소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너희들은 나만큼 능숙하지 못해서 같이 가봤자 큰 도움도 안될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한 후, 도윤은 자신의 정체를 아직은 밝히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므로 그는 당분간 이런 일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 도윤은 혼자 강당으로 향했다. “이도윤, 여기 오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니? 네가 새 가방 하나 샀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 하는 거야?” 미연은 도윤이 강당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그를 모욕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강당에서 열리는 행사를 위해 리허설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미연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다음주에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미연은 학생회 담당 부서에 공연 리허설을 여기에서 할 것을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도윤이는 5천 5백만원이나 하는 가방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우리가 그 애랑 비교될 수 있겠니?” “맞아, 너 말할 때 조심하는 게 좋겠어, 회장! 도윤이는 실제로 네 얼굴에 돈을 던질 수 있는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으로 밝혀질 지도 몰라!” 여자들이 도윤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부러운 표정을 하고 도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질투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윤의 행운이 질투 났다. 만약 그들에게 5천 5백만 원이 있다면, 가방을 사서 회장인 미연에게 줬을 텐데. 도윤은 그들의 말에 귀를 닫았고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윤은 그들이 남겨둔 난장판을 치울 준비를 하며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꺼져! 네가 이제 진짜 부자나 권력자라도 된 것 같냐?” 이때 키가 크고 근육질인 남자가 오더니 도윤을 거칠게 밀었다. 도윤이 그 남자 때문에 넘어질 뻔했다. 물론 도윤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민성이었다. 그는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또한 학교 농구팀의 주장이었다. 그의 가족은 무역업을 전문으로 했고 그 역시도 매우 부유했다. 민성 또한 도윤이 대학생활 3년간 겪었던 굴욕에 상당 부분을 기여했다. “김민성! 네가 왜 여기 있어?” 미연은 깜짝 놀랐고 민성을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민성은 미연이 좋아하는 타입의 남자였다. 그는 키도 크고, 잘 생겼고, 부유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훌륭한 농구선수였다. 그는 여자들이 홀딱 반할 타입의 남자였다. 동시에, 공연팀의 많은 여자들이 민성을 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 오늘 차 바꾸러 일찍 나갔다가 여기에 왔지.” 민성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차? 무슨 차? 민성이 너 차 샀어?” 여자 몇 명이 놀라며 물었다. “하하하. 응, 재미로 타려고 아우디 A6 샀지!” 민성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와우!” 이때 예쁜 여자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미연도 민성의 말을 듣고 살짝 마음이 움직였다. “네 차는 국산이야 수입이야?” 사실, 그 차가 국산이든 수입이든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아우디 A6는 강력한 차였기 때문이다. “수입차야! 우리 아빠 친구분이 1억 더 싸게 살 수 있게 도와주셨어! 하하하.” 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때 미연의 얼굴에 이상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닥을 쓸고 있던 도윤은 그들이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대화를 엿듣지 않을 수 없었다. 도윤은 항상 자기 차를 갖는 것을 꿈꿨었다. 그는 차라면 어떤 브랜드도 상관이 없었다. 왜 이것이 도윤의 꿈이었을까? 그것은 과거에는 도윤이 차를 살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윤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너무 궁금했다. 그는 이 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그가 연단에 앉아 있는 여자의 발을 쓸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아!” 도윤은 여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