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9화 내가 그렇게 싫어?
이한석의 뒤를 따라 들어온 강서진은 뭐 약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굴이 심하게 상한 박수혁의 몰골을 발견하곤 감탄하 듯 한 마디 내뱉었다.
“형...”
그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든 박수혁이 뜬금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꿈을 꿨어. 난 꿈에서도 은정이한테... 얼른 가서 헌혈하라고... 하고 있더라. 그래서 꿈속의 은정이를 향해 소리쳤어. 안 된다고 가지 말라고. 그거 다 거짓말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은정이는 끝까지 돌아보지 않더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강하게 살아남은 남자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 강서진의 가슴도 먹먹해졌다.
말을 마친 박수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은정이한테 잘해 주고 싶었는데. 정말 진심으로 잘해 주고 싶었는데 왜 난 걔한테 상처만 주는 걸까?”
“형...”
한참을 망설이던 강서진이 결국 입을 열었다.
“그만해. 은정 씨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일이잖아? 그쪽 집안에서 사적인 복수를 할 일도 없고. 그냥 예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거야. 어차피 달라진 건 없어.”
안진이라는 귀찮은 존재를 떼어냈으니 어찌 보면 더 잘 된 일이 아닌가 싶었다.
“뭐? 달라진 게 없어?”
코웃음을 치는 박수혁의 코끝이 빨개졌다.
‘달라진 게 없을 리가 없잖아. 나도... 은정이도 달라졌어. 예전엔 손만 뻗으면 다시 그 손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젠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어.’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듯한 모습에 강서진은 그저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어떤 위로의 말을 하면 저 귀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다가도 이렇게 평생 좌절감 속에서 사는 것도 지옥이 따로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형, 이제 인정할 때도 됐잖아. 은정 씨는 형한테 이미 지난 사랑이야. 이제 그만 놓아줘. 형을 위해서, 은정 씨를 위해서.”
박수혁의 굳은 표정에도 강서진은 말을 이어갔다.
“이제 은정 씨는 형 사과도 원하지 않아. 용서할 생각이 없으니까.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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