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왔어
소은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기분과 달리 눈물을 흐르지 않았다.
평소 종종 생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었지만 정작 죽음이 닥쳐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총알에 부서진 돌멩이의 파편이 그녀의 손목을 스치며 지났고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해적들의 발걸음 소리는 마치 사신의 목소리처럼 소은정의 숨통을 조여왔다.
옛 상처와 새 상처가 섞여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조차 엉망이 된 손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총알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 총알은 그녀 스스로를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
절망에 잠긴 소은정이 두 눈을 감은 그때, 하늘에서 또다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거대한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하늘을 메우자 해적들은 일제히 공격을 멈추었다.
총알을 다 써버린 여자보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헬리콥터가 더 위험하다고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해적들이 총구를 하늘로 바꾸고 그들의 공격을 피하는 헬리콥터가 소은정의 눈앞을 지난 순간, 죽어있던 소은정의 눈동자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헬리콥터에 그려진 저 문양은 누가 봐도 태극기였기에...
수십 대의 헬리콥터가 허공에서 비행을 멈추고 수십 명의 해적들을 완벽하게 둘러쌌다.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에 긴장이 풀린 소은정은 암초에 기댄 채 두 눈을 꼭 감았다. 이때 박우혁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혁 삼촌! 저예요, 저! 우혁이!”
하, 박수혁... 박수혁이 온 거구나...
소은정은 자꾸만 내려오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며 고개를 돌렸다. 사다리를 통해 내려온 블랙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 익숙한 차가운 표정... 분명 박수혁이 맞았다.
오른손에 손을 든 채 저벅저벅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박수혁의 모습과 4년 전, 유럽의 거리에서 그녀의 마음을 훔쳐 갔던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런 게 주마등인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소은정은 두 눈을 감았다.
허둥지둥 달려간 박수혁이 바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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