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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0화 이미 망했어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천한강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시라야, 사과해. 네가 잘못한 거니까 네가 감당해야지.” 또다시 침묵이 이어지고 소은정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와인잔을 바라보았다. 샹들리에 불빛이 술을 비추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한편, 소은정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윤시라에게 꽂히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는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었다. 한때 회사에서 처세술로 지사장 후보까지 올랐던 윤시라는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법이 사과라는 걸 물론 알고 있었다. 비록 자존심은 좀 상하겠지만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바닥에서 생존하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그녀가 소은정과 척을 졌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웬만한 재벌 2세들은 그녀와 연락은커녕 얼굴을 보면 피하기에 바빴다. 천한그룹에 출근하는 건 욕심많은 오빠, 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막고 있었고 재벌집 딸씩이나 되어서 다른 회사에 직원이 되는 것도 자존심에 내키지 않았다. 진퇴양난인 그녀의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사과뿐인데... 하지만 이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 신호민이 파혼을 하겠다며 그녀의 집에까지 와서 깽판을 치고 갔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런데 내가 왜? 난 이미 벌을 받을 만큼 받았어. 그런데 내가 왜 또 소은정의 눈치를 살펴야 해?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천한강은 물론 두 남매의 표정마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이대로 놓치겠다고? 도대체 뭘 망설이는 거야... 잠시 후, 입꼬리를 씩 웃은 소은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됐어요. 하기 싫은 사과 억지로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제가 이 정도까지 물러서는 건 어디까지나 아저씨 체면을 봐서지 윤시라 씨 본인과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누가 와도 안 통할 테니까 알아두세요.” 친절한 듯하지만 단호한 그녀의 말에 윤시라가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들었다. “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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