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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화

여름은 얼굴빛이 점점 파랗게 질렸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욱신거리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가능한 한 평생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준 씨, 여기에요!” 서유인이 얼른 뛰어가 하준의 팔에 착 감겼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열애 중인 커플의 모습이었다. “아!” 하준은 보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어제 춤 한 번 췄다고 애인 행세를 할 셈인가?’ 살짝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서경주와 위자영이 부랴부랴 다가왔다. “어서 오게” 서경주가 온화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하준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댁에서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 서경주에게 하준은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대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거만하거나 체면을 깎아 내리는 태도가 아니었다. “무슨 소리예요. 최 회장이 이렇게 와주니 우리가 영광이죠.” 위자영이 주름이 생길 지경으로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 서경주는 한껏 오버하는 아내가 민망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예의를 갖췄다. “안으로 들어와요. 날이 춥지요?” 부부가 하준을 위해 길을 터주면서 여름은 얼떨결에 하준과 마주하게 되었다. 둘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눈빛이 순식간에 엉키고 있었다. 그 강렬한 눈빛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계속 시선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아 여름은 애써 눈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여름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준도 여름을 보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짙은 눈동자가 순간 움찔했다. 하준의 두 눈에는 폭풍우 같은 거센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준이 워낙 잘 숨기는 바람에 그 눈빛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지만, 시선은 시종일관 여름을 향했다. 서유인은 그 모습에 속이 뒤집혔다. 질투심에 얼른 하준의 팔을 잡아당겨 애교를 떨었다. “하준 씨, 뭘 봐요? 여기는 얼마 전에 우리 아빠가 밖에서 데리고 온 언니에요.” 말 속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이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강여름이 강신희의 딸인 것은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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