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여름은 곧 집으로 올라가서 방에 있는 물건을 챙겨 나왔다.
새벽 2시였다.
한밤중에 친구를 깨울 수가 없어서 차를 끌고 근처의 5성급 호텔로 갔다.
로비에서 여름은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직원은 곧 카드를 돌려줬다.
“죄송합니다만 이 카드는 안 되네요.”
당황한 여름은 곧 다른 카드를 꺼내 건넸다.
몇 장을 내밀어 보았는데도 모두 쓸 수가 없었다.
그제야 집에서 카드를 모두 정지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돈은 꽤 벌었지만 모두 착실히 어머니에게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강 회장의 카드를 썼는데 그 카드가 모두 정지된 것이다. 이제 월급 통장에 연동된 현금카드밖에 남지 않았다.
직원은 좀 퉁명스러워졌다.
“고객님, 호텔에서 나가서 왼쪽으로 300m 정도 가시면 모텔이 있습니다.”
여름은 화가 났다.
“이 호텔은 사람을 이렇게 대하라고 교육받나요?”
“사실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5성급 호텔은 비싸답니다.”
여름은 분노했다. 이런 모욕은 처음 당했다.
“돈 없다고 누가 그래요? 내가⋯.”
여름은 현금 카드를 내밀다가 멈칫했다.
이 호텔에서 가장 저렴한 방이라고 해도 40만원은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직장도 없고 살 곳도 없는데 몇 푼 안 되는 돈을 다 써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냥 그리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딱딱한 직원의 말이 돌아왔다.
여름은 굴욕감에 목이 메었다. 할 수 없이 고개를 떨군 채 트렁크를 끌고 발길을 돌렸다.
모텔마다 만실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겨우 2만 원짜리 싸구려 모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름은 누군가가 이런 모텔에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고등학교 동문 단톡방에 올린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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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하준은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장이 직접 나와서 진찰을 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대충 결혼해 버린 것이 너무나 후회됐다.
15분 뒤 응급 진료실 문이 열렸다.
안에서 원장 선생님이 나오자 최하준이 얼른 다가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원장 선생님은 안경을 쓱 올리더니 웃었다.
“임신 2주입니다.”
최하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원장 선생님이 이어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두 주라니?
그러면 동성에 오기 전이니까, 서울 본가에 있을 때 웬 녀석이 침입해서 벌인 짓이군.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저, 축하드릴 일이 아니었나 보네요. 어떻게 할까요?”
이런저런 가족을 다 겪어본 수의사는 눈치가 빨랐다.
“중성화 수술을 같이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아쉽네요. 아깽이가 세 마리 보였거든요. 그게⋯.”
말하던 중에 다시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원장 선생님은 말을 멈추었다.
최하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양이도 임신하면 입덧을 합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양이마다 다르죠.”
원장 선생님이 웃으며 설명했다.
“잘 모르는 분들은 소화기에 문제가 생겼거나 뭘 잘못 먹은 걸로 오해를 하시기도 합니다.”
바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심지어 차에 타려는 여름을 밀쳐내고 오지 않았던가?
완전히 오해였다.
최하준은 이마를 문질렀다.
‘그 사람이 어쩌고 있는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