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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장

남연풍이 묻는 말에 휠체어를 끌고 가던 고승겸의 발걸음이 흠칫 멈추었다. 석양에 반짝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고승겸의 눈에는 더 이상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해탈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 만약이란 없어.” 그는 공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남연풍에게 되물었다. “만약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간다면 내가 또다시 당신에게 손을 내밀 것 같아? 어떨 것 같아?” 남연풍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안타까운 듯 자조 섞인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고승겸이 여전히 그녀에게 손을 내밀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남연풍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고승겸은 다시 휠체어를 밀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석양이 부서진 바닷가에 어둠이 잔잔히 깔리더니 순식간에 눈앞의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적막 속으로 뒤덮였다. 겨울밤 매서운 찬바람이 뺨을 할퀴고 지나가자 남연풍은 자신의 마음도 조금씩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어떤 따뜻함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서 자수해.” 남연풍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고승겸은 못 들은 척하며 남연풍의 휠체어만 계속 밀었다. 고승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남연풍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여기까지 온 데에는 내 잘못도 커. 난 지금까지 당신을 막은 적이 없어. 옳지 못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맹목적으로 당신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된 거야.”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거야. 당신 스스로 당신을 탓할 필요가 없어.” 고승겸은 남연풍의 말을 일축했다. “연풍, 당신은 틀리지 않았어. 당신은 그저 날 끔찍하게 사랑하고 또 사랑했을 뿐이야. 그러니 내가 이 꼴이 되었어도 난 충분히 만족해.” “...” 고승겸의 말에 남연풍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고승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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