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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5장

소만리는 그녀에게 다가온 경연의 얼굴을 얼어붙은 듯이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기모진의 얼굴이 확 떠올랐다. 그녀는 몇 시간 전에 그를 지켜주겠노라 기모진에게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뭘 하고 있는가? 경연이 하려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으니 나중에 기모진이 화내지 않을까? 안 돼. 그녀는 이렇게 꼭두각시처럼 경연이 하려는 대로 제멋대로 조종하게 놔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2, 3초의 그 짧은 순간 소만리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경연의 입술이 자신에게 닿으려 하자 그녀의 발걸음이 뒤로 물러났다. 경연이 길고 가는 눈을 치켜떴고 눈빛도 무거워졌다. 그가 화를 내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서재 문이 울렸다. “똑똑" “접니다.” 남사택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경연은 소만리의 턱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이상야릇한 눈길로 소만리를 한번 흘끗 보다가 돌아서서 문을 열어주었다. 소민리는 재빨리 바닥에 있는 옷을 주워 입었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공포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경연의 언행은 이미 그녀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에게 통쾌함을 주는 일이라면 그는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화가 나면 마치 인격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는 듯했고 편집증은 더욱 심한 양상으로 흘렀다. 경연이 문을 열었고 남사택은 책상 옆에 서 있는 소만리를 보고 잠시 놀란 듯했다. “소만리가 여기 있었군요. 주사를 놓으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길래.” 남사택이 말을 마치자 경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남사택을 서재로 들어오게 했다. 소만리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사택을 보며 마음속에 깊은 저항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특히 남사택의 손에 든 주삿바늘을 보고 그녀는 손을 뒤로 뺐다. 남사택은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에겐 다른 선택이 없어요.” “남사택, 당신도 미쳤군.” 소만리는 한껏 남사택을 비꼬며 마지못해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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