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윤건우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선물을 건네받았다.
“약혼식 날에 줘도 되잖아.”
약혼식?
그녀는 아마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차서아는 머리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없었다. 어떠한 해명도, 반박도 없이 선물을 건네고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녀가 떠난 후 윤건우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이채린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해줄 뿐이었다.
잠시 후 소개를 마치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윤건우와 이채린도 종적을 감췄다.
차서아만 홀로 좀 더 앉아 있다가 마찬가지로 연회장을 나섰다.
그녀는 역시 이런 장소가 적응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사람 많은 장소가 싫어서 늘 윤건우가 중도에 몰래 데리고 나갔었다. 지금도 그의 습관은 변한 것 없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바뀌어버렸다.
연회장 밖은 공간이 아주 넓었다. 차서아는 가까운 곳에 정원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곧게 그쪽으로 향했는데 미처 들어서기도 전에 안에 이미 누군가가 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진작 떠났던 윤건우와 이채린이었다.
“건우 씨, 나중에 결혼하면 나도 이런 정원을 하나 갖고 싶어요. 그래 줄 수 있죠?”
이채린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차서아의 귓가에 울리고 잠시 후 한없이 다정한 윤건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뭘 결혼까지 기다려? 너만 원한다면 지금 바로 해줄게.”
“정말요?”
이채린은 신나서 얼굴이 빨개지더니 그의 볼에 입맞춤까지 했다.
다만 이때 윤건우가 고개를 살짝 돌려서 결국 입술에 키스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수줍어서 빨개진 얼굴이 더 진하게 물들었고 허둥지둥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윤건우가 덥석 안더니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차서아는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이미 죽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일찌감치 그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서 그런 걸까?
이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녀는 전혀 괴롭지가 않았고 되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렇게까지 차분했던 적은 아마 처음인 듯싶었다.
차서아는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목적 없이 이곳저곳 누비다가 저도 몰래 수영장 근처로 다가왔다.
그녀는 멍하니 서서 맑은 물을 바라보며 넋을 놓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까 많이 힘들었지?”
상대는 바로 이채린이었다.
한편 차서아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건우 씨가 다 얘기했어. 너 건우 씨한테 사심 있다며? 하긴, 너 같은 여자애들은 건우 씨처럼 훌륭한 남자에게 반하지 않기도 힘든 일이지. 이해해.”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은 악의로 가득 찼다.
“근데 또 이해가 안 되더라. 세상에 어떤 애가 제 삼촌을 좋아하겠니?”
윤건우가 그녀의 마음마저 이채린에게 알릴 줄이야. 이건 차서아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녀의 마음을 안 받아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이제 다 죽었으니까 차서아도 진심으로 둘을 축복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왜? 대체 왜 윤건우는 이토록 그녀의 마음을 짓밟는 걸까?
차서아가 아무 말 없자 이채린이 계속 입을 나불거리며 자랑질을 해댔다.
“건우가 널 싫어하니 실은 나도 굳이 너랑 친한 척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봐. 얼마 뒤에 결혼하면 건우네 집으로 이사할 텐데 꼬맹이 서아가 계속 우리 사이에 있는 게 너무 거슬리네. 너만 떠나겠다면 바로 돈 줄게. 이제 너도 다 컸으니 독립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그 순간 차서아는 사색이 되었다. 한참 침묵한 후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
“걱정 말아요. 3일 뒤에 바로 떠날 테니까.”
하지만 이런 양보에도 이채린의 태도는 전혀 나아진 게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더욱 궁지로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왜 3일이야? 지금 당장 떠나!”
차서아는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3일 후는 윤씨 저택을 떠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버리는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