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병원에서 걸어나온 소만리, 아직도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검진서가 들려있었고, 눈가에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만리씨, 임신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3개월 전, 그녀는 아름다운 경도(도시 이름) 최고의 문벌 가족의 황태자와 결혼했다. 결혼식 날, 그녀는 모든 여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스스로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10살 때 기모진을 만난 그 순간부터, 소만리는 기모진을 가슴에 품었다. 12년 동안 그녀는 기모진의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고, 사람들 속에서 그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녀는 자신과 기모진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먼지처럼 하찮은 그녀가 어떻게 감히 이런 남자와 어울릴 수 있을까?
하지만 3개월 전, 하늘의 축복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그녀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갔는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옆에는 기모진이 누워있었다. 그녀와 기모진 사이 어젯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새하얀 침대 시트 위 빨간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어찌된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문밖에는 많은 파파라치들이 몰려있었고, 앞다투어 기모진과 신비한 여인의 외박 스캔들 기사를 보도하려고 지체할세라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기가 집안은 경도의 버금가는 문벌 귀족 집안이자 서향세가로 보수적인 기모진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기모진과 소만리의 혼사를 발표했다.
소만리에게는 꿈같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결코 아름답기만한 꿈은 아니었다. 기모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를 싫어하고 미워했다. 소만리로 인해 그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 그녀의 언니인 소만영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만리는 용기를 내 기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원망과 실망에 휩싸인 그녀는 기모진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 오늘 밤 집에 와줬으면 한다고 문자를 남겼다.
신혼 3개월 동안, 그는 집에 들어와 밤을 지낸적이 없었고, 소만리는 매일 밤 혼자 독수공방을 해야 했다. 그가 매일 어디서 밤을 보냈는지 사실 소만리는 다 알고 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장이 없자 소만리는 가슴이 아파왔다. 오늘 밤도 기모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목욕하고 쉬려는데 갑자기 방문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폭력적으로 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기모진의 차갑고 아름다운 얼굴이 안겨와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모진아, 왔구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청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가가자 남자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무정하게 그녀를 침대 위로 던졌다. 소만리의 턱을 잡아올린 그의 아름다운 눈에는 취기와 분노가 배어 있었다.
“소만리, 비겁한 수단을 써서 나랑 자고 싶을 만큼 내가 그렇게도 좋아? 응?”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깊은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하얗게 질린 소만리는 12년간 사랑해온 기모진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모진아, 오해야…”
“오해? ”
그는 그녀를 흘겨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만리, 가식 좀 그만 떨어”
그의 말소리가 떨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