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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장

이 말을 듣고 기모진은 디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고승겸은 더욱 멍한 눈을 하였고 남연풍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손에 힘이 풀렸다. “남연풍,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뜻이냐구?” 남연풍은 붉어진 두 눈을 가볍게 치켜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난 처음부터 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어.” “...” “독소가 태아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당신한테서 해독제에 쓰이는 성분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어.”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고승겸은 지금 남연풍이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끝냈으니 난 아무 미련 없어.” 남연풍의 눈길이 점점 아득하게 어두워졌다. “사택이와 초요는 나 때문에 지금 그렇게 됐어. 이 세상에는 나를 정말 아끼고 배려해 줄 사람이 없는 거야. 해독제도 필요 없어. 난 그냥 조용히 나의 마지막 길을 가고 싶을 뿐이야.” 남연풍은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말하고는 휠체어의 전진 스위치를 눌렀다. 빗줄기는 잦아들지 않았고 휠체어를 탄 남연풍의 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고승겸은 바로 그녀를 쫓아갔고 기모진도 그들을 바짝 뒤쫓았다. “남연풍, 방금 뭐라고 했어? 남사택과 초요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떻게 된 거냐구! 얼른 말해!” 기모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고승겸이 남연풍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센 빗줄기가 고승겸의 얼굴과 온몸을 적시며 그의 모습을 더욱더 차갑고 어둡게 만들었다. “기모진,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 기모진은 지금 고승겸의 존재 따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고 오로지 남사택과 초요의 상황만 알고 싶을 뿐이었다. 기모진이 계속 물어보려고 따라오자 고승겸이 손을 뻗어 그를 저지했다. 기모진이 능력이나 힘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를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남연풍이 괴로운 듯 신음 소리를 내었다. 고승겸이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남연풍이 괴로운 얼굴로 가슴을 힘껏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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