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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장

와인잔을 기울이던 남연풍의 손이 멈칫했다. 경연의 일... 그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고승겸이 그 일을 끄집어내자 일순 그녀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승겸, 왜 갑자기 경연이 얘길 꺼내는 거야? 설마, 소만리가 뭘 눈치챈 건 아니겠지?” 남연풍이 움츠러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오직 고승겸이 화를 낼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고승겸의 냉담한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흘렀다. “그녀가 알았다면 방금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을 거야.” 그 말에 남연풍은 조심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스스로 화를 자초한 거야.” 고승겸이 경멸하는 눈초리로 말했다.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을 그렇게 초라하게 만들다니.” “승겸,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어?” 남연풍은 고승겸을 떠보며 살짝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고승겸은 그녀를 향해 냉담하게 말했다. “할 수 있냐고? 뭘? 당신을 위해서, 혹은 다른 여자를 위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라고?” “...” 남연풍은 고승겸의 싸늘한 시선에 가슴이 쓰라렸지만 그의 이런 대답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승겸을 알게 된 것이 일이 년도 삼사 년도 아닌 십팔 년이다. 그녀는 고승겸보다 다섯 살 위인데 동생뻘 되는 남자한테 쩔쩔매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양친에게 버림받고 초라한 옷차림으로 굶주린 채 길거리를 떠돌던 그녀에게 이 남자가 차에서 내려 따끈따끈한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네주며 한 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랑 우리 집에 갈래?” 집. 그녀는 당시 집이 없었다. 부모는 당시 흔치 않은 의학 연구자로서 두분 다 수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무엇이든 배우면 바로바로 습득했으며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롤 모델 삼아 의학 연구자로서의 꿈을 꿨다. 그러나 그녀는 남존여비 사상에 물든 친부모에게 미움을 사게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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