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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장

소만리는 다시 스멀스멀 파고드는 피곤함을 떨쳐내려고 애써 눈을 크게 떴다. 만약 이 시약이 그녀의 모든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는 분명 아까처럼 그렇게 순순히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 아빠. 소만리의 머릿속에 사화정과 모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연이 그녀를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스스로 시도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모진,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을 수 있겠어. 아니, 난 절대 당신을 잊지 않을 거야. 영원히 당신 기억할 거야. 소만리는 결국 몽롱한 잠에 빠져들었고 경연은 그녀를 안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얼마나 더 맞으면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없앨 수 있지?” 경연이 남사택에게 물었다. “소만리의 의지에 달렸죠.” 남사택의 대답이 경연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남사택도 어쩔 수 없었다. 경연은 방에서 나왔고 양이응이 비틀거리며 문간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온기 없는 싸늘한 눈길을 그녀에게 던졌다. “소만리를 귀찮게 괴롭히던 여자가 내 총에 죽었어. 총알이 당신 심장을 관통하는 게 어떤 맛인지 느껴 보고 싶어?” 양이응은 갑자기 발밑에서부터 한기가 온몸을 휩싸는 느낌이 들었다. 양이응은 경연이 방금 말한 사람이 강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강연은 경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예전에 양이응이 경연과 사귈 때는 줄곧 이 남자가 옥처럼 부드럽고 우아하고 겸손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연에게 이런 정반대의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흑과 백, 선과 악이 극명한 대조를 보이며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양이응에게 하여금 그 점이 오히려 더 그에게 끌리게 만들었다. 경연과 사귀었던 2년 동안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이 남자를 좋아했었고 지금은 얻지 못하니 더 갖고 싶어졌다. 양이응은 고개를 숙인 채 끽소리도 못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경연, 나 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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