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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몸이 쥐어짜듯이 아프구나.’ 조경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호위무사가 긴 의자 위에 엎드려 있는 자신에게 매질하고 있었다. 그녀는 벗어나려 했지만, 힘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조경선, 천금을 주고도 못사는 여화공주의 목숨을 네가 감히 노려? 이번에는 50대로 가볍게 벌을 내릴 것이나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짐이 네 살갗을 벗겨내겠다.” 말하는 사람은 늘씬하고 꼿꼿한 체구였지만 뿜어져 나오는 풍채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조경선? 누구지?’ 그녀는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파서 어느 미친놈이 때리냐고 크게 욕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설마 내가 환생한 건가?’ 조경선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말한 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늠름한 용모, 그리고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이 사내가 바로 그녀의 지아비자 안선 왕조의 넷째 왕자인 남궁진이었다. 언뜻 보면 잘생겼으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곤장 50대를 다 맞았을 때, 조경선은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남궁진은 그녀가 기절했다고 생각했지만, 조경선은 아무 움직임도 없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 인형처럼 생기 없던 눈이 지금은 그윽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남궁진을 응시하던 조경선이 간신히 말을 꺼냈다. “남궁진, 내가 누명을 썼다고 하면… 내 말을 믿겠나?” 예전처럼 무식하게 소리 지르던 모습과 달리 갑작스러운 질문에 남궁진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옆에 있던 여화공주가 다가왔다. “무엄하구나! 누가 너를 모함한다는 거야? 내가 너를 멍청하다고 말한 것에 앙심을 품고 내 시녀인 난희를 강에 빠뜨려 익사시켰잖아! 내 유모가 직접 목격한 일인데 어찌하여 발뺌하려 드는 것이냐?” 이 말에 조경선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이년이 감히 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니!’ 그녀가 담담하게 물었다. “유모가 직접 봤다면서 어찌하여 바로 구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두었다더냐?” 바보 같은 계집이 이런 질문을 할 것으로 생각지도 못해서 여화는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바로 답했다. “내가 지금 진왕부에 머물고 있지 않느냐. 유모가 진왕비인 네가 두려워서 구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두려웠다면 유모가 주둥이를 다물어야 정상 아닌가? 한데 난희가 죽자마자 바로 나를 지목했어. 설마 유모가 죽이고 내게 누명을 씌우려는 건 아니겠지?”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유모는 난희와 정이 깊어 그녀를 해칠 연유가 없다. 공주인 내게 원한이 있는 네게 진왕부를 등에 업고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겠지.” 여화는 화가 치밀어올라 남궁진에게 울분을 토했다. “오라버니, 새언니가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것 같으니, 곤장을 더 치시지요. 50 대만으로 부족해요.” 그러자 등에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조경선이 차분하게 말했다. “무예를 전혀 모르는 내가 무슨 수로 무예가 뛰어난 공주의 시녀들을 상대할 수 있었겠느냐?” “뒤에서 습격했겠지.” “상월호에는 밤마다 호위무사들이 순찰한다. 설령 내가 밀쳐 물에 빠뜨렸어도 그녀가 소리만 질렀다면 호위무사들이 달려왔을 것이야. 한데 어찌하여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까?” 여화가 입술을 깨물며 반박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사레가 걸려서 소리 지를 수 없잖아.” 조경선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비웃었다. “너 멍청하냐? 멀쩡한 사람은 생존 본능에 의해 반드시 소리를 지르게 돼 있다. 그 사람이 벙어리가 아니고 의식이 있다면 말이다.” 남궁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조경선이라는 이년이 평소 무턱대고 떠들기만 했지 이리 논리 정연하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곤장을 맞고 나니 오히려 똑똑해졌네.’ 약간의 공포감이 밀려오며 숨이 탁탁 막히는 듯했으나 여화는 이내 차분함을 유지했다. ‘조경선은 항상 멍청이였으니 그저 허장성세를 보이는 것이야. 하니 겁먹을 필요 없어.’ “오라버니, 이 뻔뻔하기 짝이 없는 새언니 좀 보세요. 증좌가 명백한데도 억지를 부리며 제게 누명을 씌우려 합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조경선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희의 시체를 보게 해주세요.” 남궁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바닥에 누워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광기와 독기가 서려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희의 시체가 사람에 의해 실려 온 후, 조경선이 인파 속에 있는 자신의 시녀에게 말했다. “홍난아, 어서 날 부축해다오.” 홍난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조경선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마마, 걸을 수 있겠사옵니까?” 조경선은 천천히 일어섰다. 뼛속까지 아파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당당한 기세로 시체를 향해 걸어 나갔다. 고왔던 난희의 얼굴은 심하게 부풀어 올랐고, 입술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경선이 그녀의 손을 들어 보니 손톱 뿌리 부분은 흑자색을 띠었지만, 손톱 끝은 깨끗했다. 그녀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여화를 노려보았다. “독살 흔적이 있습니다. 익사했다면 먼저 물 밑으로 가라앉고,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몸이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호수 바닥에는 진흙과 모래가 있어서 만약 익사한 것이라면 손톱 끝에 진흙이 묻어 있어야 정상이나 보다시피 난희의 손톱 끝부분은 깨끗합니다. 오히려 뿌리가 이상해 보이네요.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독에 중독되어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화는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조경선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이 멍청이가 어찌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어찌!’ 조경선이 덧붙여서 말했다. “여화야, 이것이 여북 왕조의 독인 천라산이 맞지? 네 어미인 경빈께서 여북에서 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내가 이것을 폐하께 고하면 어찌 될 것 같으냐?”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여화는 완전히 당황했다. ‘만에 하나 우리 모녀가 여북의 맹독을 보관한 사실을 후궁들의 암투를 극도로 혐오하시는 아바마마께서 알게 된다면 큰일이 아닌가?’ “시녀를 독살하고 내게 누명을 씌운 여화공주는 이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까?” 등은 온통 피범벅이었지만, 꼿꼿이 서 있으니 멍청해 보였던 조경선은 오히려 위엄 있어 보였다. 조경선의 말에 여화는 말문이 막혀 넋을 잃은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경선이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여화를 몰아가자, 옆에서 지켜만 보던 남궁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여화를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내 형제의 정을 생각해 묻어주겠다. 너는 일국의 공주다. 하니 다시는 이런 비열한 수단은 쓰지 말라. 그리고 이곳에 머물지 말고, 어서 궁으로 돌아가거라.” 여화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문 채 씹어 삼킬듯한 기세로 조경선을 쏘아보고는 하인들과 함께 그녀 옆을 스쳐 지나며 자리를 떴다. 여화가 물러난 후, 조경선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려 하자, 홍난이 힘겹게 그녀를 부축하며 남궁진에게 간청했다. “전하, 마마께서 억울하게 매를 맞으셨사오니 의원을 불러 주소서. 원래 체질이 약하신 분인데 이런 고통을 겪었으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겠습니까?” 남궁진은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조경선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위압감 넘치던 여인이 갑자기 기운이 빠진 듯 홍난의 품에 무력하게 기대어 있었다. ‘이 역겨운 여인이 죽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차라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네. 그건 그렇고 조금 전 그녀의 행동이 왜 낯선 사람 같아 보이지?’ 한편,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원비 선원주가 남궁진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래도 왕비가 아닙니까. 구해주시지요. 전하, 하늘이 노하실까 소첩 두렵사옵니다.” 남궁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선원주를 바라보았다. ‘역시 원비는 착하고 선한 마음을 가졌구나. 왕비는 원비와 비교도 못 하지.’ 남궁진이 아랫것들에게 명했다. “동원아, 강헌을 불러 이년을 치료토록 하여라.” “명 받들겠나이다.” 조경선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이미 많이 사라진 뒤였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홍난이 서둘러 약을 가져오자, 방 안에는 쓴 약 냄새가 진동했다. 조경선이 약을 코끝에 대고 살짝 맡아보니 황기, 계피, 대추껍질 등 원기를 회복하는 약재들로 이루어졌을 뿐 해로운 성분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단숨에 들이켰다.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놓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녀는 적국 여북 왕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황후이자 신력에 능통하고 뛰어난 의술을 지닌 존재였다. 그래서 오직 여북 황제 한 사람만을 섬겼었다. 반면 조경선이라는 여인은 안선 왕조 조 태부의 장녀로, 어릴 적부터 멍청하기로 유명한 데다 남자를 너무 밝혀댔다. 남궁진에게 첫눈에 반해 추근대기 시작했고, 황자와 대신들이 모두 참석하는 궁중 연회 때에 남궁진의 욕실에 몰래 들어가 그에게 환각제를 먹여 자신을 간음하게 했다. 그래서 황실의 체면을 위해 남궁진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맞아들였지만, 이 모두가 진왕비의 추악한 짓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조경선으로 환생한 이 여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여북 황제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이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게다가 몸이 부실하여 장거리 이동도 힘드니 진왕비로 살아남을 수밖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이상한 향기가 코를 스쳐서 눈을 번쩍 떠보니 창문으로 하얀 고양이가 들어왔다. 조경선이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자, 고양이는 쳐들고 있던 꼬리를 내리며 순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다행히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은 남아있구나. 한데 이 고양이에서 나는 특이한 향이 너무도 이상하네.’ 고양이를 들어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자마자 조경선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 순간, 원비 선원주를 모시던 하 상궁이 급하게 뛰어 들어오더니 그녀의 손에서 고양이를 낚아챘다. 그러자 고양이는 놀랐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하 상궁이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조경선을 쳐다보며 말했다. “영이가 실수로 마마의 처소에 들어온 것뿐인데, 어찌하여 고양이까지 죽이려 하시옵니까?” “내가 학대하는 걸 네가 보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조경선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 상궁을 응시하며 말했다. “무단으로 내 처소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감히 날 모욕해? 너 자신이 누군지 잊은 것이냐? 그게 아니면 원비가 이리 가르치든?” 하 상궁은 겁을 먹고 의아한 눈빛으로 조경선을 바라보았다. ‘뭐지? 평소와 전혀 다르게 위압감을 주는 이 느낌.’ 하 상궁은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이 몰려왔다. “쇤네는 고양이가 너무 놀란 것 같아서…” “해서 날 함부로 모욕해도 된다는 말이냐?” 하 상궁의 눈 밑에서는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송구합니다.” “난 고양이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네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데 고양이가 지금 네 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안 보이냐?”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하 상궁은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영이는 원비 마마께서 오랜 세월 기르신 고양이라서 쇤네와도 친합니다. 쇤네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조경선은 방긋 웃으며 고양이를 향해 손짓했다. “영이야, 이리 오너라.” 그러자 고양이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하 상궁의 품에서 뛰쳐나와 바로 조경선의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보던 하 상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와도 친하다.” 조경선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가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두려웠던지 하 상궁은 다시 고양이를 빼앗았다. “쇤네가 오해했사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마.” 말을 마친 하 상궁이 나가려 하는데 뒤에서 조경선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 섰거라!” 조경선이 느릿느릿 다가오며 말했다. “내가 나가라고 한 적이 없거늘.” “무슨 분부라도 있으신지?” 짝! 조경선이 하 상궁의 뺨을 후려갈겼다. “이건 무례함에 대한 벌이다. 다음에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니 썩 물러가거라.” 하 상궁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약을 가지고 돌아온 홍난이 분노가 가득 찬 하 상궁의 얼굴을 보고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조경선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마, 하 상궁이 또 생트집을 잡던가요?” “그 하찮은 노비의 따위를 한 대 때려줬다.” 조경선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에 홍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 하오나 그녀는 원비 마마의 사람입니다. 만에 하나 그녀가 원비 마마께 고자질한다면 어쩌시려고요? 전하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간다면 마마께서 또 힘들어지실 거예요.” 조경선의 눈빛에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고자질? 하! 천하기 짝이 없는 노비가 내게 대들었는데 진왕비인 내가 때리지 말아야 했다는 말이냐?” 홍난은 마음속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조경선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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