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장
그러나 운명은 늘 그러하듯 종잡을 수 없었고 고서준은 내가 그은 선 안으로 조용히 침투해 또다시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펍에서 꽤 많은 술을 마셨다.
과일주라고 해도 도수가 높아 금방 술기운이 올랐다.
사실 어느 정도 마셨을 때 이만 자리를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량이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마셨을까,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쯤에야 술잔을 거부했고 나머지 두 사람도 서서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려.”
나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넨 후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배도 더부룩하고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취한 건 확실했다.
단풍국의 술은 달콤하고 또 목 넘김도 좋았지만 도수가 높아 잘못 마셨다가는 정신을 잃기 일쑤였다.
나는 세면대로 와 간단하게 세수한 다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취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정신을 놓은 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이혁과 정영민의 곁으로 향하려는 그때 익숙한 실루엣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고서준일까?
나는 정신을 다잡으려는 듯 머리를 휘휘 젓고는 눈을 똑바로 떴다.
그리고 어느 한 곳을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해 마지 않았던,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놓아야만 했던 남자가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며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데 두 발은 마치 접착제라도 바른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서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내 시선을 눈치챈 듯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나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오랜만이네.”
우리 두 사람은 짤막한 인사를 건넨 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방금 고서준에게 미소를 짓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 건 이 모든 게 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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