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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서약피의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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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장

엘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평범해서 놀랐어요?” ‘아니, 여기 월세가 엘 정장에 붙어있는 단추보다도 더 싼 것 같은데 말이 돼?’ 김소연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엘이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신사답게 안내했다. “앉아요.” 사무실에 유일하게 놓여있는 의자도 구멍이 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낡은 의자에 앉아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김소연은 하얀 다리를 드러내면서 치맛자락을 잡고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엘이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핑크색 원피스가 얼굴에 반사되어 더욱 발그레해 보였고, 검은 긴 생머리, 이마에 붙어있는 잔머리, 오늘따라 유난히 소녀 같아 보였다. ‘누가 꾸며준 거지?’ 엘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김소연은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왜 여기서 보자고 한 거예요?” 엘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면서 호출 벨을 눌렀다. 잠시후, 김선재가 비서로 보이는 여자를 데리고 걸어들어왔다. 얼굴도, 몸매도 예쁜 수행비서로 보이는 그녀는 김소연을 힐끔 보고, 또 엘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대표님.” 엘이 냉랭하게 말했다. “조유리 씨, 10월 1일 오후 제가 어디에 있었죠? 왜 함부로 제 전화를 받은 거예요?” 여비서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대표님께서는 은산 계열사로 가셨고, 오후 5시쯤 회의를 마치는 대로 핸드폰을 밖에 놔준 채 휴게실에서 쉬고 계셨어요...” 김소연은 멈칫하고 말았다. ‘지금 설명하려고 날 여기까지 부른 거야?’ 여비서는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사실 저 대표님을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발신자가 사모님이시길래 용기 내 전화를 받은 거예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엘은 자료를 정리하면서 김소연을 가리켰다. 김소연은 그의 이 행동 하나로 자존심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조유리가 입술을 깨물면서 김소연 앞으로 다가가 사과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그때는 왜 오빠라고 불렀던 거예요?” 그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유리의 목소리인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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