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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서약피의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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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이윽고 김소연의 시선이 미끄러지듯이 남자의 쇄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을 눈치챈 남자는 살짝 긴장을 풀며 미소를 머금었다. ‘미치겠네...’ 그의 얼굴만큼이나 완벽한 몸을 보고 김소연은 순간적으로 넋을 잃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넓고 탄탄한 어깨에서 시작된 완벽한 역삼각형, 강하게 조여진 잘록한 허리, 단단하게 조각된 복근 하나하나가 마치 그림 같았다. 게다가 길게 뻗은 다리는 타월 아래로 살짝 드러나 있었는데 그 선명하고 매끄러운 라인이 놀랍도록 매혹적이었다. ‘잠깐만, 이 남자가 정말 내 숙적이라고?’ 김소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으로 남자의 몸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남자의 차가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위에서 울려 퍼졌다. “다 봤어요? 아니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보고 있을 건가요?” 김소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고 남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타월을 가리켰다. “...”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던 김소연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죄, 죄송합니다!” 당황한 김소연이 허둥지둥 돌아서려던 찰나 남자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타월까지 벗겨볼 생각인가요?” 머릿속이 하얘진 채 고개를 숙여보니 타월 한쪽 끝을 자신이 움켜쥐고 있었다. ‘이런, 이게 왜 내 손에...’ 타월을 놓고 급히 돌아서던 김소연은 발이 카펫에 걸려 균형을 잃으며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타월이 스르륵 풀려버리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김소연은 당황해 눈을 꼭 감았다. “조심해요!”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넘어지는 김소연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았다. 쿵, 소리와 함께 천천히 눈을 떠보니 남자의 몸 위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녀의 손에 타월이 여전히 들려 있었고 타월은 그녀의 등 뒤로 휘감기며 두 사람을 함께 덮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벌거벗은 상태였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김소연은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그때 남자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 김소연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작은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아, 안 볼게요. 제가 천천히 타월 돌려드릴게요!” 그녀는 눈을 꼭 감고 떨리는 손으로 타월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남자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왜 대답이 없지?’ 게슴츠레 눈을 뜬 김소연은 그가 자신의 옷깃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시선은 뜨겁고도 강렬했다. “꺄악!” 고개를 숙인 김소연은 비명을 지르더니 그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야, 이 변태야! 어디를 쳐다보는 거야?” 그러나 옷깃을 바라보던 남자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훑었다. 김소연은 고개를 홱 돌려 짧은 플리츠 스커트를 확인하고는 얼굴이 벌게져 명령조로 외쳤다. “당장 눈 감아!” “나한테 보여주려고 이렇게 입은 거 아닌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남자가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도발하듯 말했다. ‘이건 누가 억지로 입힌 거라고!’ 김소연이 자세를 바꾸려 머리를 움직이자 남자는 낮은 신음을 토해내더니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지금 그 상태로 움직이면 그쪽 뺨이 어디 닿을지 보장 못 해요.” 그 말에 김소연은 즉각 움직임을 멈추고 얼굴을 더욱 붉혔다. 남자는 김소연의 등을 휘감은 타월을 벗기며 천천히 그녀의 몸을 밀어냈다. 김소연은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다, 다 된 거죠?” 남자는 온몸이 새빨개진 그녀를 보며 그윽한 눈빛을 드리운 채 얇은 입술을 살짝 끌어올렸다. “천천히 일어나요.” 김소연이 또 넘어질까 봐 그는 당부하듯 말했다. 그가 타월을 허리에 두른 것을 재차 확인한 뒤에야 그녀는 겨우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을 다시 보니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조각 같은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김소연은 그제야 오늘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떠올렸다. “이봐요, 그쪽이 지성 그룹 대표죠? 성은 이 씨고?” “그쪽은 누군데요?” 그는 고고한 눈빛으로 김소연을 내려다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말했다. “나는 한울 그룹 대표예요! 당신의 숙적!” 김소연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남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오만한 태도로 대답했다. “글쎄, 들어본 적 없는데.” 그 말에 김소연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럼 가슴 작다고 욕한 사람은 누구인데!’ “그쪽 도대체 이 대표 맞아요, 아니에요?” 확신할 수 없었던 김소연은 이를 악물고 다시 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런 옷차림으로 여기 서 있는 게 안전할 것 같아요? 아니면 내가 옷 입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무슨 짓을 할지 장담 못 하는데.” 말문이 막혀버린 김소연이 불현듯 고개를 숙여보니 상의가 거의 찢어질 듯했다. 한편 남자는 느긋한 태도로 타월을 풀기 시작했다. “꺅, 변태야!” 김소연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걸음마다 풍기는 도도한 매력에 문밖에 있던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녀를 지켜봤다. 그런데 별안간 그들의 시야가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고하준이 서둘러 옷을 치우고 고개를 돌려보니 키가 커다란 남자가 가면을 쓴 채 서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 갑자기 가면은 왜 쓴 거예요?” “누가 소연 씨를 여기 데려왔지?”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싸늘한 표정에 고하준은 찍소리도 못하고 슬며시 손을 들었다. “내가 형수님 모셔 왔어요...” “그런데 왜 그런 옷을 입힌 거야?” “그게... 신혼 분위기를 돋우면 형도 좋아할 것 같아서요!” 남자는 냉랭한 눈빛으로 고하준을 잠시 노려보다 곁에 있던 권수혁에게 지시했다. “여직원을 불러서 소연 씨에게 옷을 가져다주라고 해. 당장.” 금테 안경을 쓴 권수혁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근데 형 정말 형수님 아끼시는 것 같네요. 들리는 말로는 임신 중에도... 아니면 시원하게 냉수마찰이라도 한번 하시죠?” 고하준이 농담 섞인 말투로 그의 허리 쪽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남자는 고하준을 쓱 흘겨보더니 그의 넥타이를 잡아채서 욕실로 끌고 갔다. “악, 형! 잘못했어요! 그런데 가면은 몇 년 만에 쓰신 건가요? 예전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여자들이 쫓아올까 봐 쓰셨다지만, 지금은 대체 왜요? 혹시 숨겨야 할 이유라도 생긴 건가요?” 잠시 후 권수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 앞에 있던 김소연은 아직 떠나지 않고 복도에서 정서우와 통화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지성 그룹 대표는 무슨 완전 변태야! 그 자식 만나려고 이상한 로리타 컨셉의 옷까지 갈아입었잖아! 잘 보이기는 무슨 그 자식은 나의 영원한 숙적이야!” 앙칼진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는 동안 방 안의 남자는 깊은 시선으로 문 쪽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권수혁은 남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고하준에게 말했다. “형이 가면을 쓴 데는 분명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할 이유나 남들에게 밝히지 못할 비밀이 있는 거겠지.” “대체 무슨 비밀인데?” ...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도 김소연은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 재수 없어. 진짜 별꼴이야!” 정서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너 그 숙적이라는 사람이 대체 어떻게 생겼는데?” 김소연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더 예쁘게 생겼어.” 그 말에 정서우는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 댔다. “네가 인정할 정도면, 대체 그 남자 이목구비가 얼마나 완벽하다는 거야!” 김소연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근데 이 대표인지도 모르겠어. 몇 번을 물어봤는데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 차라리 끔찍하게 못생겼으면 좋겠는데...” 그러던 순간 그녀는 갑자기 등이 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혔다. 돌아보자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고 김소연은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엘?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남자의 날카로운 분위기에 움찔한 김소연은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떠올리며 아까 낯선 남자와의 접촉을 생각하자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누가 끔찍하게 못생겼으면 좋겠다는 거야?” “제가 말한 건 절대 엘이 아니에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작아진 목소리로 변명했다. 그러자 엘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소연 씨에게 이런 곳에 오는 걸 허락했어?” “엘, 우린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저도 볼 일이 있어서 온 거니까, 엘도 편히 볼일 보세요.” 그의 기세에 눌린 김소연은 최대한 태연한 척 말하며 얼른 이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자 복도 끝에서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어? 저건... 김은지?’ 그녀는 김은지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 잠시 후 다른 남자가 그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남자는 허정우가 아니었다. 김소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웃었다. ‘김씨 가문이 날 이렇게 짓밟았으니, 복수할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겠어. 어떤 약점이라도 잡아야 해.’ 그녀는 황급히 엘에게 말했다. “엘, 볼 일이 생겨서 전 먼저 가볼게요!” 그러고는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그 방은 복도 끝 가장 은밀한 곳에 있었고 문이 잠겨 있었다. ‘어떡하지...’ 김소연이 난감해하는 사이, 뒤에서 엘이 다가오더니 손에 든 카드를 아무렇지 않게 슥 문에 대고 잠금을 해제했다. 문이 열리자 김소연은 놀란 표정으로 그의 가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엘, 혹시 이곳에서 뭔가 수상한 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능숙한 태도를 보며 의심했다. ‘문을 이렇게 쉽게 열다니... 혹시 협박이나 공갈 같은 걸로 돈을 번 건가?’ 엘은 어이없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 호텔의 실제 주인은 바로 그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소연 씨를 쉽게 임신시킬 수 있는 사람이지.” “...” 둘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김은지의 목소리가 창문 쪽에서 들려왔다. 엘은 김소연의 손목을 잡아 문 근처의 옷장 안으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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