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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한편 진영우는 아직 몸이 허약하여 잠깐 정신이 들었다가 금세 잠들어버렸다. 옆에 있던 원장은 반쯤 혼미상태에 빠진 진영우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운 이 환자를 멍하니 바라볼 뿐, 한순간 넋 나간 정신을 다잡지 못하는 듯싶었다. “기적이야!” “이건 기적이라고!” “진영우 씨 병세가 안정됐어!” 아까까지 분명 죽어 의심치 않던 진영우가 대체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걸까? “원장님, 화백님 이젠 정말 괜찮아지신 거죠?” 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진영우의 비서 진시호였다. 평상시에 진영우의 일상생활과 외출 일정을 책임지고 있다. “당분간은 아무 일 없겠지만...” 원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재차 검사를 진행했는데 진영우의 병세가 잠시 통제됐을 뿐이었다. 게다가 태양혈과 가슴팍에 침을 놓은 흔적을 발견했다. ‘설마 이지아 그 계집애가 정말 의술에 능한 거야?’ 원장은 애써 담담한 척하며 미소 짓는 얼굴로 진시호를 쳐다봤다.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현재 상황으로선 몇 개월만 지탱할 수 있어요. 이 사이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결국 또 심장마비가 올 겁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지아가 진영우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것이다. “그럼 다들 뭐 하는 거예요? 얼른 화백님 치료하셔야죠!” 진시호가 초조한 목소리로 원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에 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반드시 이씨 가문에 가서 이지아를 다시 찾아와야 해요. 빠른 시일 내로요!” 이지아가 오늘 진영우의 병을 철저하게 치료했더라면 이 병원에서 진영우를 구한 공로를 낚아채 갈 것이다. 다만 지금 후속 치료를 진행해야 하기에 병원에서 이 공로를 털끝 하나 채갈 수가 없다. “이씨 가문의 이지아 씨라고요?” 진시호는 강현시 사람이 아니라서 이씨 일가에 대해 잘 모른다. “이씨 가문은 우리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중류층 가문이에요. 뭐 특별한 배경도 없고 방금 그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애가 바로 이씨 가문 딸이에요.” “대체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영우 씨 병세가 확실히 안정됐어요. 더 철저하게 치료하려면 이지아를 찾는 수밖에 없어요.” 그들 병원에서 이지아의 공로를 낚아채 가진 못했지만 진영우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이지아에게 등 떠민 것도 사실이다. 진영우의 후속 치료가 잘되든 못되든 그들 병원과는 일절 상관이 없다. 만약 치료에 실패한다면 그건 이지아가 무능한 데다 주제 파악 못 하고 설쳐댄 격이 된다. “이씨 가문이라고요? 알겠어요.” 진시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사색에 잠겨있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한편 이지아는 이씨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오연주의 앙칼진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이 죽일 놈의 계집애, 또 어딜 가서 싸돌아다닌 거야?” “소년원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들어가고 싶어?” “우리 집안이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 같은 창피한 년을 낳아 키운 거냐고?!” 오연주는 짜증 섞인 눈길로 이지아를 쳐다보며 마음속 깊이 혐오가 차올랐다. 그녀는 공부도 못하고 못생기기 짝이 없는 이지아가 평생 오점이라고 여기고 있다.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진작 이지아와 모녀의 연을 끊었을 것이다. 오연주의 말을 들은 이지아는 담담한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도 그럴 것이 환생 한 번 했더니 전생과 완전 색다른 가족의 맛을 보게 됐다. 전생에는 네 명의 오빠나 그녀의 사부님들이나 모두가 지극 정성으로 이지아를 아껴주고 보살펴주었다. 이 세상 모든 친인척이 다 화기애애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는 이지아였다. 오연주가 험한 말로 그녀를 꾸짖을 때마다 이 몸 주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칼날과도 같은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고통은 어느덧 몸 주인의 심장 속 깊이 파고들었다. 아직은 잠시 오빠들과 연락할 수 없으니 이씨 저택에 남아서 착한 척하는 사악한 여동생을 상대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동안 여동생이 뺏어간 모든 걸 하나씩 되돌려놔야 한다. 이건 한유리가 원래 이지아의 몸을 차지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간주해도 된다. 그녀가 한창 속으로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책 한 권이 갑자기 날아왔다. 재빨리 피하고 싶었지만 체내의 독소가 그녀의 실력을 완전히 공제해버렸다. 찰싹. 그 책은 이지아의 얼굴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뭘 서 있기만 해? 당장 가서 명화에 관해 공부하란 말이야! 내일이면 전시회 나갈 텐데 설마 거기서까지 내 체면 짓밟을 거야? 이걸 확 죽여버릴라!” “엄마, 언니가 공부에 의욕이 없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요. 제가 감귤 레몬차를 타 드렸으니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그러다 몸 상할라.” 이유영이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며 온화한 말투로 오연주를 다독였다. 그녀는 말하면서 자상하게 음료수를 건넸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제스처가 귀한 집안에서 잘 배운 티가 나는 따님 이미지에 딱 맞았다. “역시 유영이밖에 없어.” 오연주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이유영을 쳐다봤다. “언니가 이제 막 집에 돌아왔고 또 이 지경이 됐으니 엄마가 감당 못 하시는 것도 정상이야. 가능한 한 요즘엔 엄마 좀 피해 다녀. 시간 있으면 책이나 좀 읽고 뭐라도 공부하겠어.” 이 말을 들은 오연주가 조금 가라앉았던 안색이 또다시 끝없는 증오로 차올랐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속을 다 태웠는데 정작 넌 뭐 했니? 잔뜩 처먹어서 이 지경이 됐을 뿐만 아니라 나아진 거라곤 하나도 없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생 감방에 가둬 넣어야 하는 건데.” 오연주는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이유영을 다시 바라봤다. “평상시에 네 동생 좀 보고 배워. 유영이 봐봐, 공부 잘하지, 그림도 잘 그려서 거장급 선생님께 인정받지, 학교에서 인간관계도 좋지, 어딜 가나 주목받는 인물이잖아. 너랑은 전혀 비교할 수가 없어.” “너희가 쌍둥이였으니 망정이지 나 진짜 병원에서 애 바뀐 줄로 착각할 지경이라고! 이런 내 마음 알아?” 만약 이지아가 어려서부터 존재감이 없었다면 오연주도 지금처럼 마음의 격차가 크진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화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어릴 때 이지아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엄마인 오연주까지 덩달아 동네 사람들 앞에서 가슴 펴고 다닐 수 있었다. 애초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쌍둥이 딸을 얻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부 그녀의 오산이었다. 이지아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더니 오히려 오점만 남기게 됐으니까. 이런 결말을 오연주가 대체 어떻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마, 언니도 언젠가 반드시 나쁜 버릇 고치고 정직하게 살아갈 날이 올 거예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이유영이 오연주의 뒤에 서서 눈가에 짙은 경멸과 오만함이 스쳐 지나갔다. ‘칫! 너도 어릴 때나 나보다 낫다고 칭찬을 받았지. 지금은 내 신발 들어줄 자격조차 없는걸.’ ‘인생이란 역시 돌고 도는 법이지!’ 이지아는 거만을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전혀 슬프다거나 불만스러운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이유영에게 말했다. “네가 그까짓 음모와 계략을 꾸민다고 정말 고고한 공주님이라도 된 것 같아?” “뭐, 뭐라고?” 이유영의 작은 얼굴이 갑자기 확 싸늘해졌다. 한편 이지아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은 채 오연주에게 시선을 옮겼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요. 정말 진심으로 본인 딸을 사랑하는 건지? 당신 눈엔 이유영이 단지 도구일 뿐이잖아요. 사모님들 사이에서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 있는 도구 말이에요!”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오연주가 안색이 돌변하더니 버럭 화를 냈다. 이지아는 그대로 마음이 들켜버린 오연주를 살펴보더니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겉보기에 한없이 다정해 보이는 이 두 모녀 사이를 이간질할 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 다만 그런 꼼수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입밖에 내뱉는 게 훨씬 더 통쾌한 법이다. 떠나기 전, 이지아가 가여운 눈길로 이유영을 쳐다봤다. “네가 못날 땐 저 사람 지금 날 대하듯이 똑같이 널 대할 거야. 가여워 정말. 다른 집 애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는 엄마의 사랑인데 넌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하고 심지어 필요할 땐 음모와 계략도 서슴지 않아야 겨우 사랑받을 수 있잖아.” “한가할 때 잘 생각해봐. 네가 과연 저 사람한테 관심받자고 한 일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지 말이야.” 말을 마친 이지아는 거실을 떠나 2층 본인 방으로 향했다. 한편 이유영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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