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유아린은 외투만 벗고 행동을 멈추더니 지천무를 향해 말했다.
“일단 머리 좀 돌려줄래?”
“내가 뭐 못 본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따가 보게 될 거잖아.”
지천무는 침대에 앉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라 유아린은 이를 악물고 치마를 벗어 던졌고 이내 몸을 가린 건 속옷밖에 없었다.
지천무는 침대에서 그녀의 몸을 감상했다. 비록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몸매는 정말 훌륭하다.
유아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비록 지천무와 처음이 아니지만 그녀는 그날의 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오늘이 처음과 같았다.
“물 먼저 마셔.”
지천무는 그녀에게 물을 따라주었고 유아린은 물잔을 받아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에 지천무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살살해. 나 처음이야.”
유아린은 부끄럽기도 떨리기도, 심지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그녀는 졸음이 몰려와 어렴풋이 잠에 들었다.
이때 지천무는 침을 꺼내 그녀의 몸에 찔렀다.
유아린의 심장병은 아주 심각했다. 비록 지난번에 한 번 치료해 주긴 했으나 깔끔하게 나은 건 아니기에 재치료가 필요했다.
치료가 끝난 후, 지천무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휴대폰을 꺼내 강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강동 호텔이니까 입구로 와.”
30분 뒤 지천무는 호텔을 떠났고 강유영은 이미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회장님, 어디로 모실까요?”
지천무가 차에 오르자 강유영이 물었다.
“회사로 가.”
요즘 지천무는 줄곧 사무실에서 지냈다. 사무실에는 방이 하나 있었는데 방 안에는 침대와 생활용품이 있어 지내기 아주 편했다.
그는 아직 집을 사지 않았다. 외톨이에게 집이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소와 조양호가 지존 그룹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자기야, 지존이 정말 여기 있을까?”
이미소가 물었다.
“확실하다니까. 내 친구의 아는 형이 지존 그룹 사람인데 며칠 전에 지존이 이미 조용히 강주시로 왔다고 했어. 아무도 모를 때 우리가 이 기회를 잡자고. 지존의 눈에 들면 우리 조씨 가문은 확실한 일류 명문가로 거듭나는 거야. 미래에는 사대 가문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조양호는 말하면 말할수록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마치 한없이 펼쳐진 빛나는 앞날을 본 것만 같았다.
“올라가자.”
조양호는 이미소와 함께 입구로 걸어갔다.
이미소는 가는 길에 살며시 립스틱을 덧바르고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어 헤쳐 뽀얀 속살을 드러냈다.
그녀도 그녀만의 속셈이 있었다. 어쩌면 지존의 눈에 들 수도 있으니까.
신명 같은 지존의 애인이라도 된다면 그녀의 신분은 당장에 하늘을 치솟을 것이고 심지어 사대가문 도련님들도 그녀에게 깍듯이 대해야 할 것이다.
“저기요! 여긴 어떻게 오셨죠?”
두 경비원이 조양호와 이미소를 향해 다가와 큰 소리로 물었다.
“전 조씨 가문 조양호이고 여긴 제 약혼녀 이씨 가문 이미소입니다. 지존님을 뵈러 왔으니 수고스럽겠지만 전해주세요.”
조양호는 더없이 단정한 태도로 말했다.
비록 그는 경비원들을 집이나 지키는 개처럼 생각했지만 개를 잡아도 주인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여 조양호는 지존의 체면을 보고 지존 그룹의 경비원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기다리세요!”
한 경비원이 먼저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지천무가 아닌 강유영에게 보고를 올렸다. 지천무는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들여보내세요.”
강유영은 두 사람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조양호의 가문은 강주시에서도 꽤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소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 지존의 전 약혼녀였던 이미소는 모두의 앞에서 지존과의 혼약을 파기하고 조양호와 약혼했다.
이내 경호원은 두 사람을 데리고 강유영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강유영의 아리따운 외모와 굴곡진 몸매를 바라보는 조양호의 두 눈에는 탐욕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는 감히 이를 들켜서는 안 된다. 강씨 가문의 아가씨로든 지존의 비서로든 강유영은 그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유영 님, 저는 조씨 가문의 조양호이고 이쪽은 제 약혼녀 이미소입니다.”
조양호와 이미소는 굽신거리며 인사를 올렸다.
“우리 회장님을 만나시겠다고요?”
강유영이 물었다.
“네, 그러니 수고스럽겠지만 지존님에게 전해주세요.”
조양호는 싼 티 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회장님은 바쁘신 분이라 두 분을 만날 시간 없어요. 그러니 이만 가보세요.”
강유영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강유영 님, 조만간 강주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니 지존님을 꼭 초대하고 싶습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말을 끝낸 조양호는 은행 카드 한 장과 직사각형의 나무 케이스를 내밀었다.
“카드에 100억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천년 된 산삼인데 제 작은 성의니 부디 받아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강유영은 조양호가 건넨 물건을 가지고 지천무에게 찾아갔다.
“회장님, 조양호와 이미소가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네요. 그냥 밖으로 던져버릴까요?”
강유영이 물었다.
“아니, 두 사람의 결혼식은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전해.”
지천무는 천 년 된 산삼을 힐끗 보았다.
이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좋은 물건이다.
“네?”
강유영은 놀라웠지만 더 깊게 묻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두 사람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지존이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소리에 그들은 감격에 겨워했다.
지존이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면 그들 조씨 가문의 지위는 순간 한 단계 위로 올라가게 되므로 때가 되면 전 강주시의 명문가와 기업들도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꼬리를 흔들게 될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지났다.
이날 지천무는 사무실에 편히 누워 강유영의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지천무 씨?”
전화기 너머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전해졌는데 그 목소리는 아름답고 깨끗한 샘물처럼 지천무의 마음속에 흘러들었다.
“유아린 씨?”
지천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확인했다.
“맞아.”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준 적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전에 호텔에 물어봤어.”
유아린이 설명했다.
“호텔까지 가서 내 번호를 물었다고? 설마 내가 보고 싶었어?”
지천무는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지었다.
전화기 저편의 유아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천무에게 두 번이나 먹히다니. 게다가 매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
“우리 할아버지가 내일 지천무 씨를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신대. 그것 때문에 연락한 거야.”
유아린은 애써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만약 유운철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절대 지천무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는 문자로 보내. 늦지 않게 갈게.”
말을 끝낸 지천무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아린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
[내일 오전 9시, 강주 호텔.]
“이런 우연이 다 있다고?”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지천무는 실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내일 조양호와 이미소도 같은 장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