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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조수석에 앉아있던 정시후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그는 기사와 함께 차에서 내린 뒤 눈치껏 멀리 떨어져서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고연화는 얼굴을 찡그린 채 양손으로 흰색 티셔츠 옷자락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허태윤은 나른하게 턱을 괸 채 냉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잘생긴 눈매에는 장난기가 언뜻 서려있었다. …… A 회사. 팀장 진부진은 직원 관리 부족, 친인척 부정 입사에 관한 일로 조 대표에게 단단히 혼쭐이 났다. 게다가 조 대표는 그에게 최후의 통첩까지 내렸다. 만약 오늘 입은 손해를 만회하지 못해 이번 프로젝트가 허진 그룹과 협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진부진은 그의 멍청한 친척 송미연과 함께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몰랐다! 골머리를 앓던 진부진은 차를 타고 나와 인맥을 찾아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직업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허태윤의 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태윤이 아직 멀리 가지 않았다니? 이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때마침 이번 기회를 잡아 허태윤과 기획안에 문제가 생긴 이유를 잘 설명한다면 만회할 여지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진부진은 얼른 차를 머지 않은 곳에 세운 뒤 빠르게 앞쪽에 있는 검은색 메르세데스 SUV 차량으로 향했다… 최고 옵션의 메르세데스는 아주 짙은 색의 선탠이 되어 있어 밖에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부진이 조심스럽게 차창문에 대고 물었다. “허 대표님? 허 대표님, 차에 계십니까? 허 대표님…” 고급 자동차 안은 밀폐성이 아주 좋았고 방음 효과도 아주 좋아 진부진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차에 사람이 없나? 허태윤이 차에 없나? 그럼 어디 간 거지? 진부진은 주변을 둘러보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차 손잡이에 손을 올린 뒤 잡아당기려고 했다. 그시각, 차 안… 차갑고 냉담한 얼굴의 허태윤은 고연화를 봐 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고연화도 저 늙은 남자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바로 허태윤의 동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만약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3개월 동안 허 씨 가문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보일 게 분명했다. 고연화는 이를 악물고 티셔츠를 위로 훅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안에 나시를 입고 있었다. 비록 천 면적이 적기야 했지만 노출은 아니었다! 허태윤의 눈빛이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 여자가, 감히 진짜로 벗다니? 별안간 차문이 열리며 햇살과 찬 공기가 동시에 침입했다… 고연화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대로 강한 힘에 이끌려 확 당겨졌다!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남자의 몸에서 용담향과 담배 냄새가 어우러진 수컷의 야성적인 냄새가 콧코속을 가득 채워 심장이 두근거렸다… 허태윤의 반응은 몹시 빨랐다. 거의 순식간에 자신이 옆에 벗어 둔 외투를 고연화의 몸에 덮어준 그는 곧바로 품에 안아 들어 은밀한 곳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 차 문을 연 진부진은 허태윤의 품에 한 여자가 안겨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여자는 허태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었고 몸에는 허태윤의 옷을 걸쳤고 하반신은 하얗고 곧은 두 다리만 보였다… 진부진은 그대로 입을 떡 벌리고 얼어붙었다. 곧바로 정신 차린 그는 보지 말아야 할 광경을 본 것을 깨닫고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 죄, 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제가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시길래, 그래서…” 품에 안긴 사람을 꼭 안은 허태윤은 차갑게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꺼져!” 빠르게 차문을 닫은 진부진은 잔뜩 긴장하며 이마의 땀을 닦고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허태윤의 ‘좋은 일’을 방해했으니 이젠 진짜 죽은 목숨이었다… 고연화는 너무 단단히 안겨 하마터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한참을 꼬물댄 끝에야 겨우 고개를 허태윤의 외투에서 빼꼼 내밀고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아저씨, 뭐해요?” 허태윤은 고개를 숙여 품에 안긴 꼬맹이를 쳐다봤다. 짙은 속눈썹 아래의 커다란 두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불만이 가득해? 만약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알몸이 보였을지도 몰랐다! 부끄러움도 없나? 정신을 차린 허태윤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놓아주며 엄하게 말했다. “당장 옷 입어요! 이제부터 당신은 허 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에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허 씨 가문의 가풍을 대표하는 격이니 앞으로는 아무 데서나 옷을 벗는 창피한 짓은 더는 하지 말아요!” 창피한 짓? 자기가 벗으라고 했던 거잖아? 고연화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이건 아저씨 허락을 받은 셈이네요? 저 앞으로 아저씨 옷 입어요?” 허태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어느새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꼬맹이 녀석은 정말 뒤끝도 길었다! “그래요!” 고연화는 흥하고 콧방귀를 낀 뒤 옆으로 가 제대로 옷을 갖춰 입었다. 더는 그녀를 보지 않은 허태윤은 고개를 돌린 뒤 차에서 내려 차문을 세게 쾅 하고 닫았다. …… 진부진은 덜덜 떨며 정시후에게 설명했다. “정 실장님, 저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꼭 대표님께 제대로 설명해 주세요…” 차 문소리를 들은 정시후가 고개를 들자 자신의 대표님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대표님…” 진부진은 등골이 서늘해져 서둘러 허리 숙여 사과했다. “허 대표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열고 보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허태윤의 검은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뭘 봤지?” 진부진은 멍하니 있다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 저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정시후가 한발 다가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대표님, 방금 전 아가씨에게서 전화가 와서 옆으로 가 전화를 받는 바람에 차에 사람이 접근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제 실책입니다!” 허태윤은 정시후를 흘깃 쳐다본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 숙여 담배에 불을 부친 그는 고개를 돌려 진부진을 쳐다봤다. “내 차까지 찾아와 놓고, 무슨 일이죠?” 진부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허 대표님, 전 A 회사의 진부진이라고 합니다. 방금 전 회사에서 보셨을 겁니다! 그게… 제가 대표님을 찾아온 건 오늘 보신 잘못된 기획안은 사실 저희 회사의 인턴이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손을 댔던 것으로 실제 저희 회사의 수준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러 온 겁니다. 부디 대표님께서 저희에게 다시 실력을 보여드릴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허태윤은 담담하게 담배 연기를 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손을 댔다고요? 그 컴퓨터를 고칠 줄 아는 인턴이 한 겁니까?” 멈칫한 진부진은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음… 아니요, 다른 인턴입니다! 다만 두 인턴 모드 현재 해고가 된 상태로 다시는 이런 실수가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허 대표님, 혹시 괜찮으시면…” 해고됐다고? 허태윤은 가라앉은 눈으로 자동차 뒷좌석을 흘깃 쳐다봤다. “시간 없습니다.” 허태윤은 정시후에게 눈짓했다. 지금쯤이면 옷도 다 입었을 테니 곧바로 차로 향했다. 진부진이 당황해하며 쫓아갔다. “허 대표님! 이번 프로젝트 정말로 괜찮은 프로젝트입니다. 부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딱 20분 만이라도…” 정시후는 굳은 얼굴로 진부진을 막으며 경고했다. “진 팀장님, 저희 대표님께서 지금 시간이 없으십니다. 계속 이러신다면 좋은 꼴은 못 보실 겁니다.” 멈칫한 진부진은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길가로 물러선 그는 허리 숙여 최고 옵션의 메르세데스가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배웅했다. 허 대표의 차에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 당연히 그를 신경 쓸 시간이 없을 테니 나중에 다시 기회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고연화는 차 안이 답답하게 느껴져 천천히 차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었다. 고개를 든 순간, 진부진은 깜짝 놀랐다. 잘못 본 건가? 허 대표의 차에 있는 여자가 왜 오늘 해고된 고연화를 닮은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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