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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신이서는 출근 시간에 딱 맞춰 출근했다. 막 자리에 앉자 동료 겸 친구인 서지안이 가까이 다가왔다. “언니, 오늘 웬일로 화장을 했네요? 고운성이랑 화해한 거예요?” “그럴 줄 알았어. 고운성 같은 안 긁은 복권이랑 헤어지긴 너무 아깝지. 남자들 다 자존심 쎄니까 언니가 좀 양보해 줘요. 괜히 작은 일로 크게 싸우지 말고.” 서지안은 고개를 갸웃하며 겉보기에는 순진한 척 이리저리 떠물었다. 온 빌딩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녀는 무슨 순찰견처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부 꿰뚫고 있었다. 신이서는 고운성과 헤어진 이유에 대해 딱히 설명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안아, 진짜로 헤어졌어. 걔 얘기는 그만해.” 서지안도 신이서의 짜증을 알아챈 건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알았어, 안 꺼낼게. 참, 제가 들은 게 있는데, 우리 회사에 인사이동이 있을 거래.” 신이서가 막 무슨 인사이동이냐고 물으려는데 회사 메신저에 회의 알람이 떠올랐다. [9시, 회의실에서 회의.]신이서와 서지안은 동시에 시간을 확인했다. 9시까지 딱 3분 남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더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어 곧바로 노트를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신이서는 마케터였다. 화성 기획은 서울에서 나름 이름이 있는 편이었다. 광고 기획뿐만 아니라 각종 이벤트 기획도 받고 있었고 비즈니스 이벤트부터 엔터 쪽까지 그들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회의실 안, 신이서가 막 자리에 앉자 주기훈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다. “오늘 두 가지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모두 혹시라도 내용을 빠트릴까 서둘러 노트를 펼쳤다. “첫째, 대표님께서 아주 중요한 임무를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신생 회사의 창립 연회인데, 그 회사의 대표님은 해외 유학하고 돌아오신 뒷배경이 아주 대단한 분이라고 해요.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인색하지 않지만 요구가 비교적 까다롭고 어려워요. 현재까지 벌써 5개 회사의 기획안을 퇴짜 놓으셨다고 합니다.” “둘째, 대표님께서는 신이서 씨와 김유진 씨 중에서 기획팀 부팀장을 차출할 생각이신데, 누가 이 기회를 따낸다면 그 사람이 바로 부팀장 자리에 앉게 될 겁니다.” 부팀장? 신이서의 두 눈에 기쁨이 서렸다. 만약 승진하게 된다면, 앞으로 엄마의 병원비는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그 회사 이름이 뭔가요? 제가 컨택해 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녀의 말을 자른 건 신이서의 라이벌이자 회사에서 웬수처럼 지내는 김유진이었다. 김유진은 유학파로 젊고 예쁠 뿐만 아니라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삼촌도 있어 기획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왔을 때 온 빌딩의 주목을 받았었다. 하지만 신이서는 고작 일반 직원에 불과한데 도대체 뭐 때문인 건지 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비아냥거렸었다. 주 팀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김유진을 쳐다봤다. “유진 씨, 무슨 문제 있나요?” 김유진은 살짝 턱을 괸 채, 예쁜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 팀장님, 저는 괜찮은데요 이서 씨는 모르겠네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던데, 이번 달에 휴가만 몇 번이나 신청했잖아요. 난 이서 씨가 이 일 동시에 못 맡을 것 같아서요.” “대표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중시하고 있는데 만약 이서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저도 이겨봤자 기분도 안 좋고 게다가 회사 이미지에도 안 좋잖아요.” 마치 자기가 이미 이기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그 말에 노트를 적고 있던 신이서가 잠시 멈칫했다.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김유진을 쳐다보자 도발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김유진과 기 싸움하기도 귀찮았겠지만 이번 승진 기회를 그녀는 절대로 잃을 수가 없었다. 신이서는 주기훈을 향해 장담했다. “팀장님, 절대로 개인적인 일로 회사 일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김유진은 붉은 입술을 휘더니 은근슬쩍 말했다. “이서 씨 능력이야 당연히 믿지. 근데 어제 퇴근할 때 남자 친구가 회사 문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며? 이래놓고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고? 회사가 무슨 시장 바닥도 아니고, 보기 흉하게.” 그 말을 듣자 주기훈이 신이서를 쳐다봤다. 신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김유진이 또 뭐라고 하려는데 주기훈이 손을 들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됐습니다. 일 애기하죠, 사담은 그만하고. 두 사람 다 일주일 뒤에 기획안 올리세요.” “네.” 신이서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기훈을 설득하지 못한 김유진은 입술만 삐죽였다. 주기훈도 간단하게 지난주 모두의 업무에 대해 간단한 평가를 내린 뒤 회의를 마쳤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는 신이서와 김유진을 가리켰다. “두 사람 다 제 회의실로 가서 거래처가 보낸 자료 받아 가요.” “네.” 신이서와 김유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주기훈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서류를 받은 신이서는 간단하게 훑어봤다. 유일 테크? 몹시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녀는 더 생각하지 않은 채 계속 아래로 넘겨봤다. 신생 회사라서 요구가 아주 많을 줄 알았는데 고작 몇 글자밖에 없었다. 회사 이념에 맞을 것. 기획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요구가 간단할수록 일은 어려웠다. 천천히 자리에 앉은 주기훈은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얼마나 자신 있어요?” 김유진은 유일 테크라는 네 글자를 확인한 뒤 곧바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 제가 하는 일은 그냥 믿고 맡겨주세요. 절대로 실망하는 일 없을 거예요.” “그래요.” 주기훈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이서를 쳐다봤다. “이서 씨는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신이서는 입술을 꾹 다물며 말했다. 유일 테크의 구체적인 요구도 제대로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주기훈은 미간만 찌푸릴 뿐 딱히 질책은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이번은 정말 귀한 기회에요. 만약 놓치게 되면 다음이 언제 올지 몰라요.” 그 말인즉, 다음 승진을 놓친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배해졌다. 심지어 김유진은 남 모르게 신이서를 흘겨보기까지 했다. “다들 이제 일하러 가요.” 주기훈은 손을 내저었다. “네.” 신이서와 김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신이서는 기획을 생각하느라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김유진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매혹적이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서 씨, 이번에는 양보 안 하려고. 사실 이서 씨는 어머니도 편찮잖아. 괜히 나랑 경쟁할 거 없어. 나중에 내가 부팀장이 되면 꼭 잘 챙겨줄게.” 신이서는 김유진의 비아냥에 이미 익숙해진 탓에 저런 말에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녀는 예의 차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 말대로라면 평소에 이미 여러 번이나 양보를 했다는 거겠네. 이번에는 전혀 양보하지 않아도 돼. 경쟁이니까 당연히 각자 실력대로 해야지.” 김유진의 손이 멈칫했다. 정교한 메이크업도 신이서를 노려보는 눈빛을 가려주지 못했다. 감히 자신이 평소에 신이서를 이기지 못한다고 조롱을 하다니! 이게 바로 그녀가 신이서를 싫어하는 이유였다. 분명 학벌이며 외모며 집안까지 자신이 신이서보다 훨씬 좋은데 하필 고객들은 다 신이서만을 더 좋아해서 큰 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때문에 괜히 사석에서 유학파가 신이서 같은 일반대 출신도 못 이긴다고 조롱이나 당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신이서를 이겨야만 했다. 김유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최선을 다 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나중에 내가 괴롭혔다고 뭐라 하지 말고.” 말을 마친 뒤 김유진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떠났다. 신이서는 의아한 얼굴로 김유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말하는 것만 봐서는 완전히 확신이 있는 것 같은 말투였다. 설마 김유진은 이미 방법을 생각해 낸 건가? 신이서는 김유진에게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 자리에 돌아온 뒤 자료부터 살펴봤다. 유일 테크…. 별안간, 무언가 떠오른 그녀는 가방을 열어 그 안에서 신분 카드를 꺼냈다. 송서림, 30세, 프로그래머, 유일 테크. 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송서림이 유일 테크의 직원이었다 그렇다면 송서림에게 회사의 요구에 대해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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