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대체 왜 내가 이런 쓸모없는 인간을 신경 써야 하지?’ 강서윤은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분명 자신이 버린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 감정을 인정하기 싫어 짜증이 밀려왔다. 그때, 아래층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서윤은 큰 소리에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문석진이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바닥에는 산산조각 난 유리컵도 보였다. “무슨 일이야?” 강서윤이 급히 물었다. 그러자 문석진은 난처한 얼굴로 변명을 늘어뜨렸다. “그냥... 물 한 잔 따르려다가 실수했어.” 순간,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치 실수라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강서윤은 그 모습을 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그냥 나한테 말하면 돼.” “지금은 몸조리나 잘해.” 강서윤의 말에 문석진은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방문이 닫힌 순간, 그의 얼굴에는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문석진은 방금까지 힘겹게 들고 있던 다리를 천천히 내리며 중얼거렸다. “강서윤, 결국 넌 내 손아귀 안에 있어.” “하찮은 허남준 따위가 감히 나와 겨룰 수 있을까?” 강서윤은 거실에 멍하니 앉아 깨진 유리 조각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과거가 떠올랐다. 그때의 허남준의 모습. 그와 함께 살던 시절 강서윤은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컵들이 깨지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허남준은 묵묵히 다가와 조각을 치웠었다. 하지만 강서윤은 그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비아냥거렸다. “허 의사님, 당신은 내 옆에서 깨진 유리나 주울 정도로 한심한 사람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자신이 우습고 한심했다. 최근 너무 많은 일이 겹쳐서인지 강서윤도 요즘 다시 예민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강서윤은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류민희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고 강서윤은 이내 침묵했다. “그 늙은 사람들이 또 뭘 하려는지 모르겠어. 아직도 문석진을 놔줄 생각은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