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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신부가 자결했다.” 북진국 수경, 등불이 밤을 밝히던 저녁. 화려하게 장식된 거리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경쾌한 혼례 음악이 순식간에 멈췄고 행렬은 혼란에 빠졌다. 할멈과 계집종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고 수많은 백성들은 행렬의 가운데 있는 여덟 명이 든 꽃가마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시각 용과 봉황이 수놓인 꽃가마 밑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피가 끔찍할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 “여봐라. 어서 신부를 밖으로 옮겨.” 최 할멈이 다급하게 외치자 몇몇 계집종들이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혼례복을 입은 채 얼굴을 천으로 가린 여인을 가마에서 끌어냈다. 여인의 손목에 깊은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는데 피가 마구 솟구쳐 흘렀고 피 묻은 비수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일단 저택 안으로 옮기고 어의를 불러.” 승찬 대군 저택의 청지기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혐오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아파...’ 소희연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누군가 그녀의 몸을 거칠게 잡아끈 바람에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눈초리가 파르르 떨리던 그때 주변에서 조롱 섞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것 좀 보오. 소씨 가문의 큰 아씨가 손목을 그어 자결했다고 하오.” “죽으려면 좀 일찍 죽을 것이지, 하필 꽃가마가 승찬 대군 저택 앞에 도착했을 때 죽으면 어떡하오? 대군 나리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소.” “저 여인이 비열한 수단으로 승찬 대군 나리를 꼬드겨 부부인의 자리를 꿰찼지 않았소. 목적을 이루기 일보 직전에 꽃가마 안에서 손목을 긋다니.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오?” “그건 모르는 일이오. 승찬 대군 나리께서 저 여인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소. 저 여인이 진짜 시집간다 한들 평생 독수공방하며 살 운명일 텐데 차라리 지금 죽어서 부부인이라는 명예라도 가지겠다는 심산인 것이오. 속이 아주 시커먼 여인이오.” “...” 소희연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소씨 가문의 큰 아씨? 누구지?’ 갑자기 머릿속에 통증이 스치더니 낯선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순간 멍해졌다. ‘나 환생했어?’ 몇몇 계집종들이 그녀를 신방으로 데려가 침상에 던지듯이 눕혀 놓고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희연은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참으면서 간신히 일어나 앉아 얼굴을 덮은 거치적거리는 천을 걷어냈다. 손목에 끔찍한 상처가 벌어져 있었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깊게 그은 걸 보면 정말 죽으려 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손목의 혈 자리를 눌러 급히 지혈했다. 그리고 입으로 천을 찢은 다음 상처를 꽉 싸맸다. 상처를 치료하는 데 정신이 팔려 과다 출혈로 인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숨쉬기 어려워졌고 이상한 고통이 밀려왔다. 온몸이 찜통에 들어간 것처럼 뜨거웠고 땀이 차가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깐...’ 그녀는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출혈로 인한 증상인 게 아니라 약 반응이었다. 누군가 이 몸의 원래 주인에게 약을 먹인 것이었다. 손목을 그은 건 자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려 약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소희연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금 전 지혈한 탓에 몸 안의 약효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상을 붙잡고 일어나 물을 찾으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그때 밖에서 다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대군 나리,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비켜라. 내가 직접 봐야겠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와 신방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쾅. 갑작스러운 굉음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군 저택의 청지기와 호위무사, 계집종들은 겁에 질려 무릎을 꿇었다. “대군 나리, 노여움을 푸십시오.” 소희연은 침대 옆에 꿇어앉은 채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훤칠하고 차가워 보이는 누군가가 문 앞에 서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그 사람이 바로 승찬 대군 전승군이었다. “모두 문밖에서 기다리거라. 내 명령 없이는 아무도 들어와선 안 된다.” 전승군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하고는 신방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곧이어 무서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으윽.” 소희연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전승군은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잡고 다짜고짜 침상에 내던지고는 손가락으로 목을 조였다. 산소 부족과 과다 출혈, 그리고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약 기운 때문에 소희연은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놓... 놓으십시오.” 침상에 가득 널린 길조를 상징하는 물건들이 그녀의 몸부림에 쓸려 바닥에 떨어졌다. “대군 나리...” 문밖의 청지기 일행이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급히 불렀다. “닥치고 모두 꺼져.” 전승군이 험악하게 소리쳤다.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자 문밖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커다란 신방에 아직 혼인을 치르지 못한 신랑과 신부만 남겨졌다. 신랑은 신부의 목을 조르고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소희연, 감히 내 꽃가마에서 자결하려 한 것이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지금 당장 뜻대로 해주마.” “으...” 소희연은 눈앞이 점점 흐려지면서 말은커녕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전승군은 그녀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조였다. ‘이 망할 놈이... 정말 날 죽이겠다는 거야?’ 소희연은 숨을 참고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더듬거리더니 그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재빨리 급소를 정확히 눌렀다. 그 순간 전승군은 몸이 굳어지면서 그대로 자리에 넘어졌다. “콜록, 콜록, 콜록.” 그제야 겨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소희연은 옆으로 쓰러지면서 목을 감싸 쥐고 기침했다. ‘하마터면 숨 막혀 죽을 뻔했네.’ “소희연, 감히 날 습격한 것이냐?”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희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전승군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신이 날 죽이려 하는데 왜 습격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거의 질식사 직전에 이르러서 목이 쉬어버린 것이었는데 오히려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너!” 전승군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제에 점혈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 아주 드문 점혈법이었다. 전승군이 온 힘을 다해 풀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경맥에 통증이 밀려오면서 내공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충고하는데 괜히 힘 빼지 마십시오. 제가 풀어주지 않는 이상 평생 풀 수 없습니다... 으윽.” 그런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내공이 없는 이 몸으로는 약효를 감당할 수 없어.’ 사실 이 약의 해독제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약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시간을 더 끌었다간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해독제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전승군을 쳐다보는 소희연의 눈빛이 갑자기 음흉해졌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녀의 눈빛에 전승군은 등골이 다 오싹했다. “여인과 합방한 적 있습니까?” 소희연은 그에게 바짝 다가가더니 몽롱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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