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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장

“이 차...” 그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해성시에서 그녀가 운전했었던 자동차다. 그때 주하영은 그녀더러 허영심만 가득한 여자라며 심하게 비꼬았었고 그도 그 말에 동의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곧이어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설마 그 반지 그날 상미파리에서 착용해 봤었던 반지야?” 고진우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이소현, 그때만 해도 우리 헤어지지 않았어. 그런데도 반지 맞추러 갔던 거야?” “네가 먼저 배신한 거야!” 고진우는 눈에 불을 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소현은 그딴 누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배신? 하! 나한테서 주하영의 그림자를 찾고 있었다고 말했던 사람 너 아니야?” 고진우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소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것뿐이야. 그날 밤 회사에 볼일이 있다고 거짓말한 뒤에 주하영을 마중하러 공항에 갔었잖아. 소진희 생일날도 주하영하고 호텔에 갔었지. 우리가 헤어지기 전부터 넌 쓰레기였어. 그런데 지금 누가 누굴 배신했다는 거야?” 고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다 설명할게...” 그와 더는 말하기 귀찮아진 이소현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녀는 시동을 걸었다. 고진우는 차창을 두드리며 뭐라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비키지 않고 있자 이소현은 속도를 내어 그를 들이박았다. ‘펑-’ 피할 겨를이 없었던 고진우는 그대로 부딪혀 옆의 녹지 위에 떨어졌다. 눈빛이 싸늘하기만 한 이소현은 고진우가 다친 건 아닌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곧장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떠나버렸다. 다리를 다친 고진우는 이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랑색 벤틀리가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자 그는 가슴이 찌릿거리는 기분이었다. 고진우가 다치는 광경을 지켜봤던 한 행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가해자가 도망가 버렸는데 신고하지 않아요?” 고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내랑 다투고 있는 중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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