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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신씨 가문은 강성시 갑부로서 권세가 하늘을 찔렀고, 육씨 가문은 백 년 전통의 진정한 명문가이다. 강성시 4대 명문가 중에서도 육씨 가문은 압도적인 1위로 최고의 가문이자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신씨 가문과 혼사를 언급했다는 자체가 출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집안이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둘째를 임신한 지 7개월이 지난 노수정이 남산만 한 배를 안고 행사에 참석하던 중 머리 위로 거대한 스크린이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심장이 멎을 뻔했고, 비명 소리 때문에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멀쩡하기만 했다. 거대한 스크린은 비계에 부딪히면서 구멍이 뻥 뚫렸고, 겁에 질려 제자리에 얼어붙은 그녀는 마침 틈새에 서서 완벽하게 빗나갔다. 같은 행사장을 찾은 한 거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모님의 아기가 복이 많나 봅니다. 뱃속의 태아가 워낙 기가 세서 엄마까지 지켜줬네요. 정말 흔치 않은 일이죠.” 나중에 이 사건은 전설처럼 떠돌아다녔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고 있는 육상철은 신강욱 노수정 부부와 즉시 약속했고, 만약 여자아이라면 혼인을 맺기로 했다. 그리고 18살이 되는 해, 손자를 위해 친히 방문하여 혼사를 꺼내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가 바뀌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윤아와 육서진은 소꿉친구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 애정이 남달랐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기에 지난날의 혼약도 재차 언급되었다. 그러나 신지수가 갑자기 튀어나올 줄이야! “어차피 바뀐 건 변치 않은 사실이죠. 이건 하느님의 뜻이에요.” 정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며 소리소문없이 신지수를 노려보았다. “윤아 아가씨와 서진 도련님은 공공연한 한 쌍이니까 괜히 허황한 망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물론 신지수에게 들으라는 소리였지만, 신강욱과 노수정은 신윤아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전혀 듣지 못했다. 신윤아는 노수정의 어깨에 기대어 수줍은 얼굴로 물었다. “엄마, 어르신께서 모레 개최하는 연회에서 진짜 혼담을 꺼내실까요?” 노수정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양가 모두 너희 둘이 잘 되길 기원하거든.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약혼부터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신강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말이 맞아.” 양가의 혼인과 두 아이의 감정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사실 모두가 속으로 뻔했다. 설령 신지수라는 친딸을 찾았다고 할지언정 결과는 동일했다.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신윤아는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고, 두 눈에 기대와 환희로 가득했다. 육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는 순간 가짜 딸이라는 신분이 공개되더라도 감히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며, 오히려 굽신거리기 바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신윤아는 저도 모르게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신지수를 얕잡아 보았다. 정작 신지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네 사람을 스쳐 지나가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신윤아가 뒤쫓아 왔다. 그녀는 신지수의 가녀린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설마 내가 언니 자리를 차지했다고 원망하는 건 아니지? 나만 없었더라면 육씨 가문에 시집갈 사람도, 육서진의 소꿉친구도 언니였을 텐데... 그러나 아쉽게도 18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쌓아온 정이 신분보다 더 중요하기 마련이지. 안 그래?” 신윤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본인 자랑과 신지수를 깎아내리는 풍자였다. 신지수는 방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신윤아를 힐긋 쳐다보았다. 무심한 눈빛은 마치 그런 인간 쓰레기를 기꺼이 뺏어간다는데 굳이 말리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싶었다. 이내 문이 쿵 하고 닫혔다. 문밖에 덩그러니 남은 신윤아는 코웃음을 쳤다. “언제까지 잘난 척하나 보자! 나중에 질질 짜지나 마.” ... 한편, 육씨 가문. 건강을 되찾은 육상철이 고개를 돌려 곁에 있는 김지원에게 물었다. “물건은 신씨 가문에게 다 보냈어?” “네.” 김지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육상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호가니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뒤적인 탓에 모서리는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내용은 다름 아닌 오늘 아침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은인의 정보가 담겨 있는 조사 결과였다. 종이에 프린트된 2인치 증명사진은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왠지 모르게 무심한 분위기는 마치 옅은 안개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존재처럼 느껴졌다. 측면에는 고딕체로 이름 석 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신지수. 강성시 갑부 신강욱과 노수정 부부의 친딸로서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 아이와 바뀌는 바람에 밖에서 떠돌다가 다시 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래에는 지난 18년 동안 신지수의 모든 조사 가능한 성장 기록이 적혀 있었다. 육상철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몇 번이고 훑어보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이 아이였군.” 김지원이 옆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회장님, 저한테 물건을 보내라고 하시면서 정작 신강욱, 노수정 부부한테 신지수 아가씨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으니 만에 하나 오해라도 생겨서 주인공이 가짜 딸이라고 착각한다면...” 육상철은 코웃음을 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바로 그거야! 신강욱, 노수정 부부는 워낙 야무지지 못해서 설령 친딸을 데려왔다고 한들 가짜를 더 애지중지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신지수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게 될 것이며, 나중에 내가 나서서 기를 세워주면 감지덕지하기 마련이야. 그러고 나서 서진과 약혼하라고 하면 거절할 리가 없지.” 육상철은 종이를 내려놓고 비서에게 말했다. “서진이한테 주말에 나랑 신씨 가문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알려줘.” ... 어느덧 연회 당일이 되었고, 신씨 별장은 경사스러운 분위기와 화려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레드 카펫은 별장 외부까지 이어졌고,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샴페인과 맛깔스러운 디저트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저녁 7시,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전부 강성시 명망 있는 인물들이 찾아왔다. 노수정이 신강욱의 팔짱을 끼고 손님을 접대하느라 바빴다. 신윤아는 일찌감치 고급스러운 공주풍 화이트 드레스로 갈아입었고, 심플하면서 사치스러운 느낌이 묻어났다. 치맛자락에 수놓은 다이아몬드는 조명을 받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곧이어 육씨 가문의 차가 도착했고, 심플하면서 값비싼 리무진이 서서히 멈추어 섰다. 신윤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고 기사가 문을 열기도 전에 버선발로 맞이하러 뛰어갔다. 차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육서진뿐만 아니라 육상철도 잇달아 내렸다. “안녕하세요!” 신윤아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넨 뒤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육서진을 바라보았다. 이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더니 말을 아꼈다. “오빠가 날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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