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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갑자기 울린 벨 소리에 임하나뿐만 아니라 밖에 있던 안은실과 이지영도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화장실에서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안은실은 성격이 워낙 화끈해 다짜고짜 문을 두드렸다. “안에 누구야?” 곧이어 작은 칸의 문이 열리며 임하나가 걸어 나왔다. “임하나 씨?” 안은실은 그녀를 보더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왜 화장실에서 우리 얘기를 몰래 듣는 거예요?” “오해예요. 난 그냥 화장실에 있었을 뿐이에요.” 임하나는 말하면서 세면대로 걸어갔다. 그러자 안은실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임하나 씨, 대표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을 한스 그룹에서 쫓아낼 방법이 가득하거든.” “은실 씨.” 이지영이 다급하게 안은실을 말렸다. “그만해. 하나 씨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야.” 이지영의 도움 덕분에 임하나는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임하나가 떠난 후 안은실은 화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왜 자꾸 임하나 편을 드는 거야?” “내가 언제? 그냥 은실 씨가 사람들하고 싸우는 걸 원하지 않을 뿐이야.” 이지영이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임하나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임하나 네가 어쨌든 나한테 큰 도움을 줬잖아. 그럼 내가 당연히 너를 돕지, 안은실을 돕겠어?” ... 퇴근 후, 임하나는 원래 집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회사 건물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육현우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창문이 내려졌고 육현우와 이지영이 차 안에 있는 게 보였다. “하나 씨, 차에 타요. 같이 가면 되죠.” 이지영이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임하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아, 그러면 혼자 택시 타고 가려고요?” 이지영이 물었다. “꽤 멀어서 만 원은 넘을 텐데요?” 임하나는 평소에 워낙 절약해서 식사 한 끼도 아끼려 했다. 그러니 택시비는 더더욱 부담스러울 것이다. 임하나는 사실 원래 이 송별회에 참석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회사에서의 존재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녀가 없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모두가 떠난 후에 천천히 내려왔는데 이렇게 마침 육현우와 이지영과 마주치게 될 줄이야.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콜택시 불렀으니까 먼저 가세요.” “그래요?” 이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갈게요. 이따 봐요.” “네.” 육현우의 차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임하나는 이번에는 정말 도망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는 콜택시를 불렀다. 이 시간은 마침 퇴근 시간이라 단독으로 택시를 부르면 2만 원이 나오고 카풀을 하면 가격이 반으로 준다. 임하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끝내 카풀을 선택했다. 약 10분 후, 택시가 도착했다. 임하나는 뒷좌석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뒷좌석에는 이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타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엉켜있으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임하나는 그대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계속 볼 거야?” 임하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연신 사과하며 급히 문을 닫았다. 운전기사가 앞에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학생, 탈 거야 말 거야?” 임하나는 방금 본 장면을 떠올리며 차를 다시 불러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이지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언제 도착할 거냐고 물었고, 또 케이크 자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하여 임하나는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뒷좌석에서는 여전히 쪽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운전기사는 못 들은 척하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임하나는 그런 운전기사에게 엄지를 치켜들고 싶었다. 그때 무심결에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임하나는 죄지은 기분에 급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10분 후,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임하나는 차비를 지불하고 도망치듯이 급히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을 계속 지켜보던 남자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 임하나가 도착했을 때 이지영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케이크를 거의 다 나누고서야 이지영은 그녀를 발견해 자기 몫을 건넸다. “하나 씨, 내 거 먹어요.”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임하나에게 쏠렸다. 임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귤을 집어 들며 말했다. “저는 과일만 먹으면 돼요.” 하지만 이지영은 기어코 케이크를 그녀에게 건네고는 안은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러 갔다. 임하나는 케이크를 손에 들고 방을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룸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를 발견한 임하나는 사레가 들릴 뻔했다. ‘방금 같이 택시를 탄 그 남자 아니야? 왜 여기 있지? 잘못 찾아온 건가?’ “자기야, 왔어?”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안은실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남자에게 다가와 그의 팔짱을 꼈다. 남자는 안은실의 얼굴을 보더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우리 공주님이 부르시는데 안 올 수가 있나?”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질문을 던졌다. 안은실은 남자의 팔짱을 낀 채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러분, 제 남자친구 강인하예요.” 소개가 끝나자마자 룸 안은 와글와글해졌다. “대박. 은실 씨 대단하네요! 남자친구가 이렇게 잘생겼어요?” “지영 씨도 회사 그만두고 결혼하러 가고. 은실 씨는 남자친구 데리고 오고. 두 사람 부러워 죽겠네요.” “겹경사네요. 정말 축하해요.” “올해 축의금 두 번 내야겠는데?” 사람들의 축하의 말들에 안은실은 행복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구석에 앉아 있던 임하나는 방금 차 안에서 본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안은실은 남자친구가 방금 전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던 걸 알고 있을까?’ 임하나는 남녀관계에 있어서 매우 순수했다. 그래서 소이현과 육성재가 그녀를 배신했을 때 두 사람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런 배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런 더러운 관계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비록 임하나는 안은실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와 강인하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임하나가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마침 이때 강인하가 그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닿자 강인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어서 안은실의 살기 어린 눈빛이 그녀에게 향했다. “...” 임하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순간 육현우와 한승호가 밖에서 들어왔다.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아마도 두 사람의 비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지영이 먼저 올라오고 육현우는 일부러 마지막에 나타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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