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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비상구에는 두 사람의 무거운 호흡소리만 연신 감돌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는 불빛이 없어 최성훈의 얼굴에 담긴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순간 소윤정은 남자의 주변에서 저기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강력한 압박감은 사람의 마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침묵은 이미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더욱 억누르고 있었다. 소윤정은 명치를 꽉 움켜쥔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한참을 맴돌던 몇 글자를 마침내 입 밖으로 내보냈다. “성훈 씨, 우리 이혼해요.” 너무 오래 버텼다. 소윤정은 이제 힘이 빠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최성훈은 이 결혼을 혐오했고 소윤정을 싫어했다. 심지어 그녀가 낳은 아이도 미워했다. 그래서 하준이 아빠가 필요했을 때도 최성훈은 그토록 냉정하고 매몰찬 태도를 보였다. 아빠와 자식 간의 유대감은 반절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최성훈이 소윤정을 미워하고 무시하더라도, 그리고 그녀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더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하준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말아야 했다. 하준에 대한 최성훈의 무관심은 갓 낳은 새끼를 버리는 어미처럼 아주 무참했다. 그래서 참는 데 익숙해져 있던 소윤정이 마침내 그 두 글자를 내뱉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목소리에 담긴 억울함도 선명하게 들렸다. 다만... 그림 같은 눈썹을 가진 남자는 소윤정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최성훈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물었다. “뭐라고 했지?” 먹색의 물감이 소윤정의 눈에 톡 떨어졌다. 순간 최성훈의 날카로운 눈빛은 그녀의 마음속 깊숙한 곳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소윤정은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한번 오랫동안 가슴 속에 눌러두었던 그 말을 꺼냈다. “이혼하자고 했어요.” 소윤정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약간 높았다. 그녀는 최성훈이 글자 하나하나까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느린 속도로 말했다. “하!” 어둡고 좁은 복도에서 한 남자의 시큰둥한 코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는 극도의 경멸을 담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했다. 소윤정은 그가 왜 웃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다시 제대로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 “성훈 씨,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5년 동안 참고 사는 일이 고통스러운 걸 잘 알아요. 이제 당신에게 자유를 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전 하준이 외엔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는 소윤정의 생명과도 맞바꿀 수 있는 존재라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하준이만 빼고. 최씨 집안이 부와 권력으로 하준의 양육권을 소윤정에게 넘기지 않으려 하면 그녀가 죽을 때까지 울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윤정은 일부러 최씨 집안의 재산을 원하지 않고 아이만 원한다고 강조했다. “하하!” 최성훈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단지... 고막을 아프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 웃음소리에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윤정은 그가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그녀가 전한 이혼 소식에 너무 기쁜 나머지 웃음을 터트린 줄 알고 서둘러 덧붙였다. “이틀간 하준이가 아파서 당분간은 이혼 합의서를 전해줄 수 없을 것 같아요. 며칠 후, 아이가 좀 나아지면 전해줄게요. 그래도 되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소윤정의 어깨를 눌렀다. 소윤정은 움직이려 했지만 최성훈의 곧고 긴 다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이미 비집고 들어온 후였다. 큰 체구가 소윤정의 온몸을 덮어 버렸다. “소윤정! 결혼하겠다고 말한 사람도 너고, 이혼하겠다고 말한 사람도 너야. 언제 내 의견을 물어본 적 있어?” 약 5년 전,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때 최성훈은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회복해서 퇴원하면 즉시 소윤정과 결혼하여 소씨 집안의 큰 은혜에 보답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때 최성훈에게는 왜 결혼해야 하는지 물어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송이준이 돌아온 이 시점에 소윤정은 이혼을 언급하고 있었다. 정말 잘 짜인 각본이었다. 최성훈에게 꽉 잡힌 쇄골에서 생생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 통증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 소윤정은 서둘러 그의 손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최성훈은 그녀를 괴롭고 아프게 하기로 작정한 듯 손을 밀어낼 틈도 주지 않았다.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최성훈은 쇄골을 누르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지고 싶으면 가지고, 버리고 싶으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윤정아, 도대체 날 뭐로 여기는 거야?” 마지막 말은 비명처럼 들렸다. 최성훈의 질문을 마주한 소윤정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쇄골의 통증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먼저... 이것부터 놔 줄 수... 있어요?” “이혼이야말로 당신과 수아 씨의 관계를 돕는 일이 아닌가요?” 결혼한 지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소윤정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은 최성훈과 강수아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두 사람은 소꿉친구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의 모든 시간을, 손을 맞잡고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성훈이 가문의 권력에 못 이겨 갑자기 다른 사람과 결혼해야만 했다. 반면 강수아는 그를 위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줄곧 바보같이 최성훈을 기다렸다. 다만... 최성훈이 결혼한 후, 강수아는 사람들에게 남의 결혼 생활을 망친 내연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자신의 고향인 강성시를 떠나 멀리 타향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소윤정이야말로 강성시 시민들의 시선 속에 둘의 감정을 파괴한 악한 마녀로 비쳤다. 그리고 강수아는 애처롭고 가련하며 순진무구한 소녀로 되었다. “감히 수아의 이름을 언급하지 마!” 최성훈의 고함소리와 함께 소윤정의 쇄골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소윤정은 결국 마음 아파할 겨를조차 없었다. ‘소윤정,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보이지 않니?’ 처음부터 끝까지 최성훈이 가슴에 품은 사람은 바로 강수아였다. 소윤정은 가슴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윤정아, 잘 들어!” “감히 나 최성훈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하나 같이 결말이 좋지 않았어! 너도 예외는 아닐 거야!” “송이준이 돌아오니 나와 이혼하고 같이 살기라도 하려고? 내가 그런 기회를 너에게 줄 것 같아?” 다음 순간 차가운 입술이 소윤정의 입술을 감쌌다. 그것은 키스라기보다는 사나운 맹수가 으르렁거리며 무는 것에 가까웠다. 최성훈은 자기의 화를 모조리 키스에 쏟아부었다. 순간마다 소윤정은 고통에 눈썹을 움찔거리며 무의식적으로 그를 피하고 밀어내려 했다. 어쩔 수 없이... 남자라는 존재는 강탈을 일삼는 맹수와도 같았다. 그녀가 더 심하게 발버둥 칠수록 최성훈은 더욱 강하게 물어뜯었다. 소윤정은 입술과 혀, 입안의 내벽까지 모두 아팠다. 마음을 꿰뚫는 고통이었다. 결국 아픔에 무감각해진 소윤정은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그저 작은 소리로 흐느낄 뿐이었다. “흑흑...” 고통스러운 신음은 최성훈의 동정심을 끌어내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최성훈은 소윤정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다른 손으로 그녀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부부로 지낸 지 5년, 소윤정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최성훈이라는 남자는 그 방면에 대한 욕구가 많았다. 매달 그녀가 생리 때문에 쉬어야 하는 며칠을 제외하고 그에게 출장 일정만 없다면 두 사람은 밤마다 침대에 뒤엉켜 있었다. 어젯밤 최성훈은 밤새도록 외박하였기에 둘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 순간 그녀의 강력한 저항은 남자의 정복욕을 불러일으켰다. 최성훈은 소윤정을 단단히 가둔 채 그녀의 옷을 잡아당겼다. 소윤정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최성훈의 횡포한 혀를 깨물며 그의 뜻을 꺾으려 했다. 최성훈이 혀끝으로 그녀가 굳게 닫은 이를 열 때 소윤정이 세게 깨물었다. 순식간에 피비린내가 두 사람의 입안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흡...” 최성훈은 아픔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품속에 있던 그녀를 놓아주었다. 소윤정의 눈시울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최성훈의 입꼬리와 입술에는 모두 피가 물들어 있었는데 마치 연한 루주를 한층 바른 듯 선홍빛 꽃들이 피어 있었다. 최성훈이 소윤정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마치 독이 든 얼음 같아 보는 이의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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