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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앞에 서 있는 소윤정을 발견한 강수아는 일부러 최성훈의 팔짱을 꼭 끼며 가까이 다가갔고, 낯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리고 잘생긴 남자의 팔을 붙들고 애교를 부렸다. “성훈 씨, 나 힘드니까 천천히 가.” 청아한 목소리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똑똑히 흘러 들어갔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선남선녀는 설령 한 줌의 재로 변할지언정 소윤정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빼어난 외모와 남다른 기질을 타고난 남자는 그녀와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남편이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예쁜 여자는 다름 아닌 남편의 첫사랑인 강수아였다. 마치 한 몸처럼 달라붙은 두 사람을 보자 소윤정의 가슴이 시큰거렸다. 이내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고, 피비린내가 금세 입안을 가득 채웠지만 상처받은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힘들다는 소리에 최성훈은 우뚝 멈춰서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 “몸도 안 좋으면서 무리하기는!” 비록 말투는 쌀쌀맞아도 다정함과 걱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는 여태껏 소윤정에게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제 자리에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며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두 사람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강수아가 남자의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최성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훈 씨 와이프 아니야? 인사라도 해야지.” 훤칠한 체격의 남자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조각 같은 얼굴에는 경멸이 가득했고, 싸늘한 눈빛으로 프런트 옆에 서 있는 소윤정을 바라보며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내 강수아를 안은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품에 안긴 여자를 향해 말했다. “무시해. 괜히 열 받지 말고.” 소윤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지? 무려 자기 와이프인데 고작 다른 여자에게 열받는 존재밖에 안 된다는 건가?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싶었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온 남편을 바라보며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물론 자신을 싫어한다고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이토록 극혐할 줄은 몰랐다. ‘숨 쉬는 것조차 거슬릴 정도로 미운 건가?’ 따라서 강수아 앞에 나타난 지금은 더 말할 게 없었다. 가슴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 탓에 소윤정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강수아는 최성훈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두 팔을 뻗어 남자의 목을 감싸 안더니 생긋 웃었다. “내가 열받을 게 뭐 있어? 대체 낯짝이 얼마나 두꺼워야 자기 남편을 불러들이기 위해 아픈 아들마저 이용하는지 보려고 했을 뿐이야. 성훈 씨를 내 곁에서 떼어내려고 어린 자식마저 도구로 삼다니, 진짜 하준의 친엄마 맞아?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조사해봐.” 말을 마치고 나서 소윤정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윤정 씨가 설마 그런 사람은 아니겠죠?” 대놓고 체면을 깎아내리는 그녀의 말에 소윤정은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 만약 이 타이밍에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최성훈의 앞에서 감성팔이 하는 셈과 다름없었다. 강수아의 한 마디에 최성훈은 속으로 이미 단단히 오해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물론 그를 사랑하는 자체가 소윤정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소윤정을 바라보는 최성훈의 눈빛은 온기란 찾아보기 어려웠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싸늘했다. 차가운 시선을 마주한 소윤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어갔다. 이내 황급히 변명했다. “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하지만 최성훈은 그녀의 해명 따위 들을 생각이 없었고, 강수아를 안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먹구름이 낀 남자의 얼굴에서 소윤정은 적나라한 혐오감을 보아냈다. 커다란 몸집이 움직이는 순간 최씨 가문 경호원들이 재빨리 뒤따랐고, 최성훈의 뒷모습을 향한 그녀의 눈빛과 마지막으로 변명할 기회조차 차단했다. 소윤정은 경멸이 가득한 남자의 표정을 보자 가슴이 미어질 듯싶었다. 그리고 힘겹게 복도 벽에 의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중심을 찾았다. 강수아를 안고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심장이 마비될 것처럼 아팠다. 곧이어 두 줄기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이제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30호 보호자 분 계세요? 30호 병실 가족분!” 담당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윤정이 서둘러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토닥이더니 애써 미소를 쥐어 짜냈다. 그리고 담당 간호사를 향해 다가갔다. “접니다. 무슨 일이죠?” 간호사는 그녀를 힐긋 쳐다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호자가 되어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이가 열이 41도까지 올라서 발작을 일으키는데 정녕 안 보이세요? 밖에 돌아다닐 틈이 어디 있어요?” 소윤정이 병원비를 확인하러 나왔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아들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고열에 시달린다는 소리를 듣자 변명할 마음조차 없었다. 결국 초조한 나머지 서둘러 뛰어서 병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님, 여 주임님 좀 불러주세요. 전 병실에 가서 아이 상태부터 확인할게요.” 아이가 열이 41도까지 올랐다고 하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병실에 돌아온 그녀는 병상에 누워 눈을 질끈 감은 채 온몸을 떨고 있는 하준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간호사 한 명이 녀석을 위해 이미 해열해주고 있었다. “보호자 분이세요? 간호사실에 가서 얼음 좀 챙겨와서 아이의 이마에 올려놓으세요. 그리고 알코올도 달라고 하셔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닦아주세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하준을 보며 소윤정은 발만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리고 100m를 전력 질주하는 속도로 간호사실을 향해 뛰어갔다. 열이 펄펄 끓는 아들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초조한 나머지 알코올로 몸을 닦을 때 손이 너무 떨려서 면봉마저 제대로 잡지 못했다. 결국 덜덜 떨며 알코올을 절반 이상 쏟았다. 간호사는 실수투성이인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면봉을 빼앗아 대신 아이를 닦아주었다. “제가 할게요. 우선 옆에 앉아서 진정 좀 하세요. 마음만 조급해봤자 도움이 전혀 안 되니까.” 차라리 아픈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소윤정은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는 아들을 바라보며 심장에서 이루 형용하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다. 이때, 간호사실에서 간호사 한 명이 뛰어와서 외쳤다. “여 주임님이 안 계시네요! 어떡하죠? 최씨 가문 도련님의 여자친구분을 진료하러 모든 선생님이 18층에 갔어요. 결국 우리 건물에 남아있는 의사 선생님이 단 한 명도 없네요.”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데 만약 30분 내로 해열하지 못한다면 생명이 위험할지도 몰라요. 여자친구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모든 의료 자원을 독차지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글쎄, 제가 듣기로 최 대표님이 여자친구를 치료하기 위해 18층을 통째로 빌렸다고 하던데 경호원까지 배치해서 간호사들이 얼씬거리기도 힘들어요. 심지어 원장님께서 직접 동행하고 있다고 했어요.” 소윤정은 간호사들의 대화에서 모든 의사가 강수아를 진료하러 가서 하준을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심지어 환하게 웃고 있는 강수아의 얼굴이 눈앞에 훤한 듯싶었다. 그녀는 하준이가 치료받는 걸 원치 않았기에 일부러 판을 키운 것이다. 하지만 최성훈은 아이의 아빠로서 어찌 이유 불문하고 강수아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지? 본인이 사랑하는 여자라서 뭐든지 해주고 싶다는 건가? 그게 설령 말도 안 되는 요구일지언정? 병원에 다른 환자들도 많은데 중환자나 응급 환자도 안중에 없다는 뜻인가?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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