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내가 신고했어
두 시간 후, 경찰서 앞.
“여은아, 나랑 지훈이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어.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약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한 거야. 나도 왜 갑자기 경찰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더니 경찰서로 데려온 건지 모르겠어.”
나를 쳐다보는 송여월의 가련한 모습은 정말로 동정심을 자아냈다.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오해라고 하니, 언니는 일찍 가서 쉬어. 내가 언니 대신 차 불렀어.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나랑 지훈이는 집까지는 못 바래다줄 것 같아.”
내가 전혀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자, 그녀는 염지훈을 뜨거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염지훈의 안색이 조금 싸한 것 같자 별다른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차로 운전해서 온 탓에 송여월이 떠난 것을 보자 옆에 있는 염지훈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곧장 차로 향해 조수석에 앉았다. 이미 새벽 4시가 된 시각이라 잠기운이 몰려 와 차 시트에 기대 잠을 청했다.
하지만 얼마 앉기도 전에,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신고한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몹시 낮았고 냉랭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응.”
너무 졸려 눈도 뜨고 싶지 않았던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이유는?”
염지훈은 출발할 생각이 없는지 시동도 걸지 않고 있었다.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눌러 졸음을 쫓은 뒤 눈을 뜬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잘 자고 있던 사람 야밤에 깨웠잖아.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 양심이 그냥 못 넘어가거든.”
살짝 미간을 찌푸린 그는 나를 보며 눈썹을 까딱했다.
“잠을 깨웠다고?”
의아해하는 염지훈의 모습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보아하니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을 그는 모르는 듯했다.
그리하여 나는 더 말을 이어가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어떤 일들은, 적당히 하고 끝내는 게 옳았다.
염지훈도 더는 추궁하지 않고 곧장 시동을 걸었다.
이튿날.
밤새 잠을 자지 못한 나는 휴가를 내고 못 잔 잠을 보충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별장 안, 염지훈은 없었다. 먹을 것을 찾아 배를 채운 나는 내내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켰고, 이내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튀어나왔다.
일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송여월의 전화였다.
막 다시 걸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송여월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나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저쪽에서 송여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은아, 시간 있어? 잠깐 만날까?”
“없어.”
짧게 대답한 나는 소파에 기대 쭉 늘어졌다.
“내가 청산각으로 갈게.”
말을 마친 송여월은 내가 거절하기라도 할까 겁이 난 건지 황급히 전화를 뚝 끊었다.
15분 후.
문밖에는 송여월이 서 있었다. 진녹색의 롱스커트 차림의 그녀는 굴곡진 몸매에 세련된 차림,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까지 더해져 서른이 넘은 여자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보며 눈썹을 까딱했다.
“꽤 빨리 왔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진강 쪽은 지훈이가 너무 작다고 해서 너희 이웃 단지에 별장 하나를 사줬어. 여기서 안 멀어.”
말을 마친 그녀는 거실로 들어와 집안을 둘러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이 집은 지훈이가 3년 전에 산 건데, 그때 여길 우리 신혼집으로 쓰겠다고 했었어. 그래서 인테리어며 장식이며 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꾸몄었는데, 지금까지 남겨뒀을 줄은 몰랐네.”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언니 안목은 늘 괜찮지. 근데 여기서 2년 지내면서 오래 보니까 좀 질리네. 시간 좀 지나면 싹 다 갈아엎으려고.”
집안을 둘러보던 송여월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더니 조금 어두워졌다. 그녀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
“송여은, 나랑 지훈이는 5년 전에 이미 만나고 있었다.”
휴대폰을 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눈썹을 까딱했다.
“그래서?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
꽤 잘 관리가 된 얼굴이 조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끼어든 건 너란 얘기야. 지훈이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지훈이와 너는 그저 두 가문에 정략결혼이 필요해서 같이 있는 것뿐이야.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까 염씨 가문 며느리 자리는 이제 돌려줄 때가 됐어.”
몸을 뒤로 기댄 나는 시선을 들어 올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래, 알겠어.”
송여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에 조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송여은, 못 알아듣겠어? 지훈이는 널 사랑하지 않아. 그런데 왜 이 눈치껏 빠지지 않고 딱 붙어서 나랑 지훈이를 떼어놓으려고 해?’
“쯧.”
몸을 바로 한 나는 조금 짜증이 나 턱을 괴며 그녀를 쳐다봤다.
“구구절절 말이 많네. 그러니까 나더러 염지훈과 이혼하라고 권고하러 온 거야?”
송여월은 꽤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가 지훈이와 이혼만 한다면 네가 손해 보지 않게 지훈이에게 최대한 재산 좀 많이 나눠주라고 할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내 통화가 이어지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전화 너머를 향해 물었다.
“염 대표님, 당신 뜻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