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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얘기 좀 해

주영백이 차 옆에 서 있는 데다 손에는 도시락도 들고 있는 것을 본 나는 잠시 멈칫하다 서둘러 다가갔다. “아저씨, 오셨으면서 왜 벨을 안 누르셨어요? 날이 이렇게 추운데요.” 주영백은 웃으며 들고 있던 도시락을 내게 건넸다. “이건 여사님께서 아침에 준비하라고 분부하신 겁니다. 사모님께서 오늘 병원에 대표님 간병하시러 갈 테니 저에게 가는 김에 가져다주라고 하셨습니다. 괜히 아침 만드느라 고생 하지 않으시게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사님이 손자에게 아침 하나 가져다주는 걸로 이렇게 빙 둘러 오는 걸 보니 염지훈의 영웅 행적에 대해 알게 되고는 내가 염지훈이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까 봐 아침이라는 핑계로 나를 염지훈에게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어르신의 마음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도시락을 받은 뒤 주영백에게 말했다. “괜히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주영백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여사님께서는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으시니 대표님 쪽은 사모님께서 잘 보살펴주세요. 여사님께서는 대표님께서 퇴원하시고 나면 두분이서 같이 본가로 오셔서 같이 시간 좀 보내달라는 말씀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지훈이가 퇴원하면 같이 뵈러 갈게요.” 떠나는 주영백을 마주한 나는 손에 들린 도시락을 보며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염지훈 쪽은 송여월이 있으니 내가 가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여사님이 이야기를 한 마당에 가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잠시 망설이던 끝에 나는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병실 안, 송여월은 침대 옆에 앉아 야채죽을 손에 든 채 다정한 목소리로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는 염지훈을 향해 말했다. “지훈아, 이건 내가 아침에 끓인 죽이야. 한 번 먹어 봐.” 그렇게 말하며 염지훈에게 먹여주려고 했다. 염지훈은 송여월이 입가까지 가져다 댄 죽을 피하며 말했다. “배 안 고파.” 그에 송여월도 더 강요하지 않았고 죽을 옆에 내려놓았다. 작고 오밀조밀한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상처 부위 아직도 아파?” 염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크게 안 다쳤어, 괜찮아. 밤새 여기 있었으니 그만 가서 쉬어.” 송여월은 고개를 저으며 초롱초롱한 눈을 했다. “네가 여기 누워 있는데 가서 마음 놓고 잘 수가 없어. 여기 있게 해줘.” 어떤 것들은 너무 많이 보게 되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라 나는 문가에 잠깐 기대려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간호사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라고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가에 몸을 기대기도 전에, 염지훈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두 눈의 차가운 기운이 흩어지며 무덤덤함이 깃들었다.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생각이야?” 염지훈의 시선이 나를 향한 것을 본 나는 몸을 바로 하며 곧장 병실로 들어갔다. 도시락을 한쪽 탁자 위에 올린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미안, 온 타이밍이 영 말이 아니네.” 말을 마친 나는 도시락을 열어 여사님이 준비한 영양 만점 도시락을 꺼낸 뒤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염지훈과 송여월을 쳐다봤다. “여사님께서 가져다주라고 해서 온 거야. 계속해, 방해하지 않을게.” 미간을 찌푸린 염지훈은 고개를 돌려 송여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돌아가, 가서 푹 쉬어.” 송여월은 염지훈을 향해 가련한 눈빛을 했다. “지훈아, 네가 너무 걱정돼.” “돌아가!” 그 한마디를 내뱉는 염지훈의 말투에는 분노와 짜증이 섞여 있었다. 송여월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염지훈의 말을 들은 그녀는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 송여월이 간 것을 보자 염지훈은 나를 쳐다보다 시선이 도시락으로 향했다. “왜 안 열어?” 인상을 팍 쓴 나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손이 부러진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못 여나? 하지만 그 말을 꾹 삼킨 나는 도시락을 대신 열어주었다. 숟가락을 챙기다 송여월의 죽이 너무 걸리적거리기에 내친김에 죽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도 염지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숟가락을 건넨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마음 아프면 다시 주워줘?” 시선을 피한 염지훈은 코웃음을 쳤다. “송여은, 쓰레기통을 아주 제대로 활용하네.” 비아냥이 명백하게 느껴졌다. 입술을 꾹 다문 나는 의자에 앉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칭찬 고마워, 염 대표.” 나를 흘깃 쳐다본 염지훈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우아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염씨 가문에서 준비한 것들은 늘 그의 취향에 따르니 당연히 편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아마 식사가 만족스러웠던 건지 수저를 내려놓은 그는 검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송여은, 우리 얘기 좀 해.” 나는 생각을 가다듬으며 그를 쳐다봤다. “무슨 얘기?” “나랑 여월에 대해서.” 그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고 표정도 덤덤해 평소 같은 귀한 집 도련님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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