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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화내는 거야?

병원을 나온 뒤, 청산각으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아예 곧장 회사로 향했다. 원래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하는 수 없이 장소를 바꿔 휴식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서 반나절을 잤고 저녁이 되어서는 전지안에게 끌려 쇼핑을 나갔다. 전지안은 겨우 중산계급으로 칠만한 가정의 딸이었다. 시 방송국에서 기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타지로 가 반년을 고생하고 돌아온 성과가 꽤 괜찮아 방송국에서는 보름의 휴가를 내주었다. 그 덕에 전지안은 툭하면 송한 그룹으로 찾아와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은아, 우리 밥 먹고 나면 마사지 받으러 가자. 끝나면 영화 보러 가는 건 어때?” 전지안은 활발한 사람이라 나를 잡아끌며 한쪽으로는 이제 하려는 것들을 줄줄이 준비하고 있었다. 별다른 의견이 없어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요 며칠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와 전지안은 먹방 모드를 시작했다. 염지훈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와 전지안은 막 티켓 확인을 마치고 영화관에 들어가던 참이었다. 발신자 표시를 본 나는 미간을 찌푸리다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이쪽의 소란한 소음을 들은 건지 전화 너머에서 남자의 맑은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어디야?”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중이야.” 그렇게 대답한 나는 영화관에서 조용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화 너머로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지다 이내 염지훈의 조금 냉랭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그가 내 행동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전화 너머를 향해 그렇다고 대답한 뒤 물었다. “염 대표, 무슨 일 있어?” 전화 너머로 감정을 억누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여은, 나 지금 병원이야.” 그 말에는 명백한 한기가 담겨 있었다. “알아.” 사인도 내가 하지 않았던가. 전화 너머에서 다시금 침묵이 이어지더니 한참이 지나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배고파.” 멈칫한 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송여월 옆에 없어?”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염지훈이 말을 이었다. “시간 안 될 것 같으면 주 집사 아저씨한테 부탁드리고.” 아니….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하필이면 주 집사를 찾겠다는 건 대놓고 염씨 가문 사람들에게 이 송여은이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은 내팽개치고 영화관에 와 영화나 본다고 알려주려는 의도이지 않은가. 한숨을 내쉰 나는 치미는 성깔을 누르며 말했다. “뭐 먹고 싶은데?” 딱히 염씨 가문 사람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저 이 일을 염씨 가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부모님도 알게 될 테니 송정헌의 성격상 또 나에게 제멋대로에 철이 없다고 할 게 분명했다. “다 돼.” 염지훈은 꽤 간단한 답을 주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전지안을 쳐다봤다. 대충 알아챈 듯 그녀는 입술을 삐죽였다. “남자한테 불려 가는 건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고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손을 들어 나를 쫓아내더니 비련의 얼굴로 말했다. “가 봐. 네 몸은 붙잡을 수 있어도 네 마음은 잡을 수 없다는 거 알아. 나 홀로 스러지게 내버려둬.” 전지안의 연기가 절정을 향해가는 것을 본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나중에 보상해 줄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나는 영화관을 나왔다. 염지훈은 막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 흰죽 말고는 딱히 먹일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청산각으로 가 흰죽을 끓인 나는 그것을 챙겨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병실 안, 염지훈은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의 옆에는 진한 일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손에는 파일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회사 일에 대해 논의 중인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하게 들어가는 대신 아예 병실 문 앞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려는데 염지훈은 나를 발견한 듯 말을 멈추더니 진한일에게 나가보라고 했다. 진한일이 떠나자, 안으로 들어간 나는 흰죽을 침대 옆에 놓았다.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 누운 남자를 흘깃 쳐다본 내가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다른 건 못 먹는대, 그런대로 먹어.” 말을 마친 나는 한쪽의 의자를 끌고 와 손으로는 턱을 괸 채 저녁도 배달했겠다 이제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내가 가져온 죽을 쳐다본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이 지나, 염지훈은 나를 쳐다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했다. “당시 상황이 위급해서 깊게 생각 못했어.” 잠시 의아해진 나는 이내 그가 송여월을 교통사고에서 구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미건조하게 응하고 대답했다. “응?” 미간을 찌푸린 염지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그의 영웅사에 대해 이야기하고고 싶지 않아 담담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죽 식어.” 내 반응에 기분이 안 좋아진 건지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송여은, 화난 거야?” “아니?” 그렇게 대답한 나는 염지훈의 답이 들리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 대표는 늘 선을 잘 지키잖아. 당시 상황이 위급해서 그랬다고 한다는 건 스스로 알고 있다는 거겠지. 염 대표랑 나랑은 원래 정략결혼일 뿐이니 사적으로 어떤 여자에게 마음을 주든 아끼든 난 화낼 자격 없어.” “마음을 줘? 아껴?” 염지훈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나를 쳐다보는 얼굴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몰랐는데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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