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가연아, 너…어떻게 왔어?"
가연은 지은을 한번 쳐다보더니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병원 장부에 일억 원 입금했어. 건우야, 난 여기까지 밖에 도울수 없을 것 같아."
’뭐라고?’
"가연아, 어디서 일억 원이나 구해왔어? 설마 호진이 그 자식한테 달라고 한 거야? 안돼, 가연아, 나 이 돈 받을 수 없어, 그 사람 돈 가지면 내가 뭐가 돼? 게다가, 나 지금 돈이 많아, 정말 아주 많거든, 일 조나 있으니 네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야!”
짝!
가연은 건우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부탁인데, 너 제발 좀 정신 차리고 꿈 좀 그만 꿔! 열 달 동안이나 꿈을 꾸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이제 그만하자, 내일부터 우리 각자 잘 지내는 거야!"
말을 마치자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 병원을 뛰쳐나갔다. 뒤쫓아 나가려던 건우를 붙잡은 지은은 가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머머머, 이게 웬일이야? 어떻게 네 사촌 동생인 임호진과 관계가 있지? 설마, 유가연이 너 엄마 수술비를 빌리려고 사촌 동생과 같이 잔 건 아니겠지? 아이고, 감동스러워라...."
퍽!
건우가 손을 들어 지은의 얼굴을 한 대 후려쳤다.
"네 이런 헛소리 따위나 지껄이다니, 죽고 싶어?"
"네가…네가 감히 날 때려?"
지은은 건우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끄덩이라도 잡아 뜯으려 했다. 마침 지나가던 수간호사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양지은,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그만 좀 해, 병원에서 싸움질이라니, 일 그만두고 싶어?"
수간호사가 호통을 치자 지은은 곧 건우 몸에서 떨어지더니 건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개자식아, 감히 내 뺨을 때려? 설마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았어?"
수간호사도 건우를 알고 있었다.
"왜 양지은 씨의 뺨을 때린 거죠?"
이때 건우는 엄마 쪽을 가리키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 엄마를 여기 이렇게 버려놓았는데, 맞을 짓 한 거 아닌가요? 병원 장부에 잠시 돈이 없다고 하여 내가 돈을 안 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여기에 죽든 말든 버려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단 말인가요?"
수간호사는 우나영 환자가 복도에 버려졌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양지은, 이게 무슨 수작이야? 누가 너한테 이렇게 하라고 했어? 임건우 씨에게 사과하고 당장 환자를 병실로 돌려보내!"
지은은 감히 수간호사를 거역 못 하고, 순순히 사과하고 나영을 원래 병실로 돌려보냈다. 건우는 하루빨리 수술 날짜를 잡으려고 어머니의 주치의 이청하를 찾아갔다.
이청하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지만 의술이 매우 뛰어났다., 그녀는 강주에서 명의라고 불리는 이흥방의 손녀이자 예쁘게 생기기도 하여 병원의 얼짱으로 불렸다.
건우는 어머니의 병세가 급한데다 지은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마음이 심란한지라 별생각 없이 청하의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순간 그는 멍해지고 말았다. 안에서 미녀 한 명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새하얀 피부와 날씬한 몸매가 눈앞에 펼쳐졌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놀라서 무려 3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여자는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얼른 손에 들고 있는 옷으로 자기 몸을 막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의사 선생님,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건우는 얼른 사과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가 바로 이청하였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건우는 문에 기대어 가슴을 두드리며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찰칵!
방문이 벌컥 열리고 문에 기대있던 건우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몸을 겨누고 보니 청하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그게……"
건우는 당황해서 방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의사 선생님, 방금 내가 말하려던 것은.... 아 그 양지은이 우리 엄마를 복도에 내버린 일일이에요. 만약 우리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건우는 이 한마디로 청하의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말을 듣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쩜, 이런 일이...."
급히 병실로 달려간 그녀는 나영을 밀고 병실로 들어오는 지은을 보고 크게 호통쳤다. 지은은 고개를 숙이고 감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나영의 상황을 자세히 검사하고 난 청하가 말했다.
"임건우 씨, 어머니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수술할 것을 건의합니다, 혹시 수술비를 마련하는 게 어려우시다면 제가 먼저 빌려드릴게요."
" 아뇨, 괜찮습니다. 수술비는 이미 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건우는 청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일억 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다. 옆에 가만히 듣고 있던 지은도 놀라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의사가 머리가 돌았나? 이 여자 등이나 처먹는 놈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다니.... 혹시 건우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게 아냐?’
“이미 수술비를 구했으면 됐어요, 내일 임건우 씨 어머니가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네, 고맙습니다!"
"따라오세요, 내일 수술 준비에 관해 얘기해 드릴게요."
건우와 함께 병실을 나서며 그녀는 주로 수술 전후 가족이 준비해야 할 것, 그리고 시간 안배에 대해 말해주었다.
"내일 가능한 한 빨리 오세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요. 수술은 제가 직접 할 것입니다, 성공률이 높을 거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우가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는데 청하가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방금 본 건 모두 싹 다 잊어버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흥!"
건우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있을 뿐이라고 장담했다.
"그럼, 가보세요!"
건우가 병실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청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녀는 건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의 단지 효심에 감동한 것뿐이다. 지난 십 개월 동안 매일 어머니 시중을 드는 건우를 눈여겨보았다, 그처럼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
건우는 곧바로 병원 장부에 이억 원을 더 입금해봤다.
딩동!
입금 성공.
은행 카드를 손에 쥔 건우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단숨에 최고 재벌의 도련님으로 되다니....
‘임호진! 너 기다려, 감히 내 아내를 넘봐? 내가 널 어떻게 수습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봐.’
호진을 생각하니 가연이 어머니 수술비로 낸 일억원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진의 돈을 빌린 것 같았다.
‘호진이 그 개자식이 협박해서 같이 잔 거 아니야? 이 개자식!’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속이 타서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급히 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합니다. ‘삐’ 소리 후에는 요금이 부과됩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그는 생각할수록 불길한 생각이 들어 바로 장모 수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가연이 집에 있어요?"
"가연이가 집에 있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아직도 나한테 전화할 낯짝이 있어? 담도 크지.... 앞으로 더는 귀찮게 하지 마."
"아니, 어머님, 잠시만요! 가연을 절대 임호진과 같이 있게 하면 안 돼요! 돈은 제가 해결할게요, 만리상맹 쪽도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허풍 그만 떨어! 네가 해결할 수 있다면 돼지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내가 알려주는데, 이제부터 임호진은 내 사위야, 가연은 이미 호진과 잤어!"
윙-
건우는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터질 것 같고 하늘 땅이 빙빙 도는 같았다. 그는 뭐라도 말하려 했는데 수옥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건우는 그만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넋을 잃고 말았다.
‘만약 가연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가 백조 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