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다음 날 아침, 하현은 게슴츠레한 눈과 지저분한 머리로 전기 자전거를 타고 서울의 제일 번창한 비즈니스 지구로 향했다.
하엔 그룹은 이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있었다.
어젯밤 태규가 하현에게 전화해 하엔 그룹 인수인계 절차를 다 밟았다고 말했다. 오늘 서류에 서명을 하면 회사는 이제 하현의 소유이다.
하현은 이 일에 대해 꽤 걱정했다. 어쨌든 간에 하현은 1조 원으로 회사를 산 것이다. 하현이 아침도 먹지 않고 이른 아침에 여기로 달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에 도착하자 하현은 말문이 막혔다. 과연 서울의 제일 번창한 지역이다. 여기저기 고급 자동차들이 많았다. 하현은 전기 자전거를 타고 왔다. 만약 하현이 자전거를 아무데나 주차했으면 아마도 나중에 끌려갔을 것이다.
하현은 회사 한 바퀴를 돌고 드디어 게이트 앞에 주차 공간을 찾았다. 그가 주차를 하자마자 갑자기 끼익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그런 다음 쾅 소리가 났다. 하현의 전기 자전거가 포르쉐에 치여 날라갔다.
"젠장!"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전기 자전거는 며칠 전에 도난 당했는데 지금은 또 포르쉐에 치였다.
어쨌든 포르쉐는 고급 자동차였다. 포르쉐에는 긁힘 자국 몇 개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현의 전기 자전거는 뒤에서 아작이 났고 이제 탈 수가 없었다.
'나랑 3년이나 같이한 전기 자전거인데!'
하현은 눈물 날 것 같았다. 그는 이 전기 자전거와 매우 정들었다.
한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포르쉐 차 페인트 값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 남자가 그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 거예요?" 아리따운 한 여성이 포르쉐 문을 열고 걸어 나오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와…"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에 감탄을 했다. 여자는 정교한 근무 복장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우아해서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여자 같았다.
이런 미인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게 할 것이다.
"김겨울?" 하현은 웃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하현은 출근 첫 날에 오래된 동기를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겨울이 하현과 그의 전기 자전거를 들이박았지만, 오래된 동기이니 그는 눈 감아줄 생각이 있었다.
하현은 겨울의 책임을 묻지 않고 가서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다. 이때, 겨울은 하현을 쳐다보았다.
"너야? 하현? 네가 왜 여기 있어?"
겨울은 한껏 긴장했다. 어젯밤 하현은 플래티넘 호텔에서 동기생들에게 사기 쳤다. 오늘 여기에 왜 온 걸까? 겨울을 따라온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기 치려고 온 건가?
겨울은 그런 생각을 하자 증오로 가득 찼다. 그녀는 이 포르쉐를 대출과 더불어 8억 원 넘게 주고 구매했다. 겨울은 자신의 차를 굉장히 애지중지했다. 그녀는 이 사기꾼이 자동차에 긁힘 자국을 몇 개 더 추가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걸 수리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지는 몰랐다.
"하현, 너 왜 자꾸 나쁜 짓을 해?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나 치고!" 겨울은 격정적으로 말했다.
"이거, 네가 나를 들이박은 거야, 알아?" 하현은 어이가 없는 듯했다. "우리가 동기였으니까 나는 원래 그냥 넘어가려고 했어. 근데 어떻게 내가 너를 쳤다고 말할 수가 있어?"
"무슨 일이에요?" 그때, 힘센 중년 남성이 빠르게 걸어왔다. 그는 회사의 경비실장이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경비들을 데리고 왔다.
현장을 목격하자, 경비실장은 겨울을 알아보며 얼른 말했다. "김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겨울이 본부장으로 승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경비실장은 겨울에게 잘 보일 기회를 찾기 급급해, 뻔뻔하게도 그녀에게 알랑거리고 있었다.
"이거 안 보여요?" 겨울은 차갑게 말했다.
경비실장은 웃으며 말했다. "김 부장님, 안심하시고 쉬고 계세요, 제가 대신 처리하겠습니다."
경비실장은 말을 하며 하현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전기 자전거를 발로 차고 소리질렀다. "당신은 누구세요? 여기는 하엔 그룹만을 위한 주차 공간인 거 모르세요? 여기에다 전기 자전거를 주차하시면 안 돼요!"
"오, 멋지네요, 누가 그 규정을 만들었어요?" 하현은 차갑게 말했다. 그는 처음에 화가 나지는 않았으나, 누가 전기 자전거를 발로 차는 걸 보니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누가 만들었냐고요? 당연히 저죠!" 경비실장은 차갑게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마세요. 손해배상 하시고 김 부장님에게 사과하세요. 아니면 제가 오늘 당신을 경찰서로 넘길 거예요!"
겨울은 경비실장의 말을 듣더니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그만해요, 괜히 어렵게 가지 말자고요. 손해배상만 하게 하세요. 경찰한테 넘기지는 말고."
하현은 겨울을 힐끗 쳐다보았다. 겨울에게 아직 조금의 친절함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하현은 여전히 바닥에 나뒹구는 전기 자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을 뜨고 똑바로 보세요. 내가 먼저 여기에 주차했어요. 제가 인심 써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반대로 제가 배상을 하라고요. 제정신이에요?"
"당신!" 경비실장은 하현을 가리켰다. "이 사람 바보에요? 김 부장님께서 이미 경찰을 부르지 않기로 결정하셨는데, 당신은 왜 자꾸 부장님께서 배상해야 한다고 우기는 거예요? 누가 포르쉐를 운전하고 당신 전기 자전거를 들이박아요?"
경비실장은 이를 악물며 계속했다. "잘 보세요, 여기는 저희 회사의 개인 주차 공간이에요. 외부인은 여기에 주차하면 안 돼요."
"오, 이런 우연이? 저도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하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어딜 감히 김 부장님을 불쾌하게 해요? 부장님은 말 한마디로도 손쉽게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만들 수 있어요." 경비실장은 하현을 가엽게 쳐다보았다.
'얘는 너무 가난해. 옷은 길가의 가판대에서 산 거고. 전기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해. 청소부가 맞겠지? 김 부장님을 불쾌하게 했으면 오늘 화장실 청소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맞지?'
"이 사람은 누구야? 왜 전에 본 적이 없지? 김 부장님을 불쾌하게 했는데 무섭지 않나?"
"그러니까, 우리도 다 같은 생각이야. 왜 굳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
"그냥 김 부장님의 관심을 받고 싶었나 봐!"
"말이 되네! 백조를 삼키려는 두꺼비인 셈이네! 거울 속의 자신을 안 들여다보나? 싼 옷을 입고 있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현은 조용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 몇몇도 전부 하현에 대해 작게 수근수근 거리고 있었다.
겨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우리 회사에서 일해? 누가 널 뽑았어? 왜 난 모르지? 근데 네 태도로 봐선 누가 뽑았던 간에, 너는 해고됐다고 말할게. 손해배상도 할 필요 없어. 그냥 네 전기 자전거를 들고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