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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엿들은 손수진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진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향 다원. 진태웅과 양지안은 마주 앉아 옆의 거대한 통유리창을 통해 강주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아늑한 분위기에 진태웅은 그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원래 양지안과 접촉이 많지 않아서 이야깃거리도 별로 없었다. 대진 그룹 프로젝트 협력에 관한 일은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언급하지 않았다. 식사 도중 양지안은 양정국의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저는 지금 태웅 씨와 밖에서 밥을 먹고 있어요. 태웅 씨는 오늘 저녁에 다른 일이 있대요. 할아버지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게요.” 양지안은 수줍은 듯 얼굴이 상기된 채 전화를 끊은 후 진태웅을 힐끗 쳐다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전화하셨어요? 뭐라고 하셨어요?” 진태웅은 어렴풋이 대화 내용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물어보았다. 양지안은 빨간 얼굴로 말했다. “태웅 씨가 방금 이혼했다고, 태웅 씨가 지낼 곳이 없을까 봐 걱정되어 저더러 집으로 데려오라고 해요.” 뒤의 말은 양지안이 하지 않았지만 진태웅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신혼부부가 따로 잘 리가 없지 않은가. 양정국은 두 사람이 빨리 좋은 스타트를 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솔빛아파트가 마음에 안 드시면 이사 오세요. 양씨 가문의 저택에 방이 많아요. 시간이 길어지면 할아버지가 의심할 수 있어요.” 잠시 말이 없던 양지안이 갑자기 제안했다. 진태웅은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기회를 찾아서 설명해야죠.” “낭만이 없네요. 제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요?” 진태웅의 냉정한 대답에 양지안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분위기에 대해 매우 자신이 있었고 평소에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남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하필이면 눈앞의 이 남자만 무덤덤했다. 그녀는 여자의 자존심이 도발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예쁜 눈동자를 굴리던 양지안은 갑자기 마음속에서 장난기가 생겨 진태웅을 놀려보고 싶었다. 이때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리며 그녀의 계획을 방해했다. 진태웅은 전화번호를 보고 살짝 눈을 찌푸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휴대폰을 내려놓기도 전에 다시 윙윙거리며 소리를 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했지만 상대방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받아보세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잖아요.” 양지안이 조용히 말했다. 진태웅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형부! 큰일 났어요! 엄마랑 신우빈이 형부가 사는 곳을 알아냈어요. 곧 찾아가 귀찮게 하려고 하니 절대 집에 가지 마세요. 일단 숨을 곳을 찾으세요. 제가 할아버지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할게요.” 손수진의 목소리는 초조하고 긴장했으며 진태웅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매우 걱정했다. “알았어. 이 일은 네가 상관하지 마. 할아버지는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방해하지 말고.” 진태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숨을 쉬었다. “수진아, 앞으로 이런 일로 나에게 전화하지 마. 난 이미 네 언니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진태웅과 손수진의 관계는 오히려 남매 같은 감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손수진의 고백은 진태웅을 당황하게 했고 아직 그녀를 어떤 위치에 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 그는 손씨 가문과 아무 연관이 없으니 손수진과 계속 연락하는 것이 불편해져, 이 기회를 빌려 입장을 밝혔다. 오래 끌기보다는 단칼에 정리하는 게 낫다. 전화 너머의 손수진은 진태웅의 거리감을 느끼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형부와 언니의 일에 대해 저도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저도 이 집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형부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전화한 거예요. 할아버지는 아직 형부와 언니가 이혼한 걸 모르세요. 저는 얼마나 더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 보러 와주세요.” 손수진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더 얘기하면 눈물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무슨 일이이에요? 제가 도울 수 있어요?” 진태웅의 기분이 이상한 것을 눈치챈 양지안이 물었다. “큰일 아니에요.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진태웅은 손을 저으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신우빈과 오향은의 복수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할아버지뿐이다. 손윤서와 결혼한 3년 동안 할아버지는 그를 특별히 아껴주셨고 진심으로 가족처럼 대해주셨지만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생각해보니 한 달이나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저녁 9시, 두 사람의 첫 ‘데이트’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진태웅은 양지안이 자신을 바래다주려는 제안을 사양하고 스스로 택시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갔다. 진태웅이 사는 13동 앞에는 세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중 한 대의 검은색 승용차 안에서 신우빈은 짧은 머리를 한 ‘원숭이’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신우빈 씨, 다시 확인해야겠어요. 진태웅이 아무런 백이 없는 게 맞아요?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신분이 비교적 민감한 편이라 자칫했다간 조호성 형님께 설명할 것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자식은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한심한 놈이에요.” 신우빈이 자신 있게 말했다. ‘원숭이’는 그제야 안심했다. “신우빈 씨 이 말이 있으면 충분해요. 이따가 그놈 다리 하나 부러뜨리고 봅시다.” 두 사람은 음흉하고 악랄한 표정으로 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약 10분을 기다리자 신우빈의 시야에 익숙한 인물이 나타났다. “왔네요.” 진태웅이 다가오자 세 대의 차 문이 동시에 열리며 안에서 십여 명의 흉악한 인상을 쓴 사람들이 내렸다. 오향은과 손민준이 앞장서서 진태웅의 길을 막았다. “개자식, 드디어 널 잡았어. 오늘 누가 널 구해줄 수 있나 보자! 전에 날 때리던 그 여우년은 어디 갔어? 너랑 함께 안 왔네?” 양지안이 없는 것을 본 오향은은 눈살을 찌푸렸다. 미리 소식을 들은 진태웅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빈정거리며 말했다. “많은 사람을 불렀네? 왜? 뭐하려고?” “뭘 할 셈이냐고? 당연히 널 죽여버리려고 그러지!” 손민준은 화나 나서 욕을 퍼부었다. “지난번에 나한테 한 대 때렸지? 오늘 열 배로 갚아주마!” 이런 유치한 말은 위협이 되기는커녕 진태웅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때 신우빈도 앞으로 나서며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진태웅, 잘 들어, 너에게 기회를 줄 거야. 지금 무릎을 꿇고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한 후 강주에서 사라지면 널 살려줄 수도 있어.” 신우빈은 진태웅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 남자는 파리 같은 존재였고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 신우빈의 요구를 들은 진태웅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이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비웃듯 말했다. “네 뒤에 있는 이 쓰레기들을 믿고 너무 나대는 거 아니야?” 이 말을 들은 ‘원숭이’와 그의 동생들이 모두 안색이 변했다. “난 입만 살아 있는 놈이 좋아. 너 나중에 살려달라고 빌 때도 이 태도를 유지했으면 좋겠어.” 원숭이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가 조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잔인하고 독했기 때문이다. “먼저 이놈 다리부터 부러뜨려!” 그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부하들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태웅에게 다가갔다. 바로 이때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여기서 소란 피워? 무법천지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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