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이분이 바로 강주 명문가인 변씨 가문 상속자 변세준 씨야. 방금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어.”
신우빈은 주변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높은 목소리로 이 남자를 소개했다.
주변의 많은 손님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변씨 가문은 강온 지역 부동산 시장을 장악하며 최근 2년간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자산 규모는 양씨 가문과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옆에 있던 서연주는 이런 일엔 관심이 없는 듯 오해가 풀리자 바로 업무를 보러 떠났다.
손윤서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우빈아, 너 참 대단해. 손윤서 씨처럼 천하절색의 미인을 곁에 두었어?”
아까부터 손윤서의 미모를 눈여겨본 변세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부잣집 도련님도 부러워하자 신우빈의 허영심은 크게 만족하게 되었다.
“하하, 놀리지 마. 세준아, 네 신분으로 얻지 못할 미인이 없을거야. 이따가 네 도움이 필요해. 윤서가 양씨 가문과 협력할 프로젝트 기획서를 준비했거든...”
아부를 늘어놓은 뒤 신우빈은 그의 목적을 말했다.
“쉽네. 기획서는?”
변세준은 이런 건 문제도 아니라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했다.
손윤서가 건네는 문서를 받자마자 변세준은 뒤에 있던 경호원에게 넘겼다.
“양 대표님에게 전해주고 내가 추천했다고 말해.”
변세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양씨 가문은 어느 정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협력이 성사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획서가 양씨 가문에 전달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손윤서는 기뻤다.
신우빈은 고마워했지만 이 기회를 빌려 진태웅을 깔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서야, 이제야 신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이런 쓰레기는 평생 이런 분들과 접촉할 수도 없을 거야.”
듣기 거북한 말이었지만 손윤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난 3년 동안 진태웅이 가정을 잘 돌본 것은 인정하지만 그는 안목, 인맥, 능력이 없었다. 진태웅과 함께하면 아무런 도움과 자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장까지 방해할 뿐이다.
“이분은 친구야?”
변세준도 맞은편에 있는 진태웅을 보고 물었다.
“이런 쓰레기가 어찌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신우빈은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런 거지가 어떻게 파티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어. 자선 경매가 곧 시작하니 우린 일단 자리에 앉아봐. 이런 쓰레기에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으니까.”
세 사람은 진태웅을 지나쳐 앞쪽에 있는 자리에 앉아 즐겁게 얘기했다.
진태웅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제 그는 손윤서 때문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신우빈도 그저 우스운 광대일 뿐 이런 사람과 말다툼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자선 경매의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돈을 내기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놀다가 싫증이 난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는 식이었고 물론 모든 수익금은 기부될 예정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서화 작품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는데 의외로 경쟁이 붙었다.
그들은 이런 물건을 소장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이 기회를 빌려 인맥을 넓히고 명망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경매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구석에 앉은 진태웅은 그냥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위층 사무실 안.
양지안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사무실 책상에 놓인 몇 개 프로젝트 기획서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협력을 고려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이때 똑똑 노크 소리가 나더니 비서 은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변씨 가문에서 추천한 기획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어요?”
“가져와.”
의자에 기대어 있던 양지안은 문서를 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며 앉았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윤서라는 이름을 보고 중얼거렸다.
“재밌네.”
내용을 훑어본 양지안은 리스크, 세부 사항은 물론 예상 수익까지 모두 협력 조건에 부합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문서를 덮으며 양지안은 은아를 다시 불렀다.
“이 문서는 진태웅 씨에게 전달해 그분더러 결정하라고 해.”
진태웅과 손윤서의 관계를 몰랐던 은아는 그저 대표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문서를 받은 진태웅은 의아해했지만 곧 양지안의 의도를 이해했다. 진태웅의 말 한마디면 손윤서와 대진 그룹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다.
진태웅은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
“이 일은 대표님더러 결정하라고 하세요. 저의 생각은 고려할 필요 없어요.”
며칠 동안 진태웅은 많은 생각을 했다. 비록 이혼했지만 자발적으로 복수할 생각은 없었다. 오성후가 주었던 것들을 이미 돌려받았으니 앞으로 손윤서가 어떤 운명과 미래를 맞이할지는 그녀 자신의 몫일 뿐 그는 더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앞줄에 앉은 세 사람은 진태웅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모두 경매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준아, 개인적으로 소장한 좋은 물건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무엇을 내놓을 거야?”
대학 시절 신우빈과 변세준은 친분이 좋았고 서로의 취향과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변세준이 설명하려고 할 때 직원이 트레이를 들고 등장했다.
“마침 이 경매품이 내것인 데 소장 가치가 있어. 손윤서 씨도 분명 좋아할 거야.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우빈아, 네가 사서 사랑의 징표로 선물해도 좋을 거야.”
변세준이 농담처럼 말하자 손윤서와 신우빈은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음 경매품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세계적인 소장품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관중들도 사회자의 말에 호기심이 동해 모두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사회자는 조심스럽게 팔찌를 들어 올렸는데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살짝 붉어 있었다.
“여러분들은 네레이드라는 팔찌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감정 결과 이 팔찌에 박힌 세 개의 보석은 모두 사파이어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아주 귀중한 진품입니다. 경매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이 기부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익명 요청을 드린 관계로 기부자의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번 ‘미래’라는 이름으로 된 사파이어 경매 가격은 60억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팔찌의 경매 시작가격은 100억 원입니다.”
...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그저 거친 숨소리만이 사람들이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려줬다.
잠시 후 연회장은 시끌벅적해졌다.
“혹시 농담이에요? 주최 측이 실수한 거 아니에요? 팔찌 하나가 100억이라뇨!”
어떤 사람은 주최 측에서 홍보를 위해 꼼수를 부린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100억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기부할 바보는 없었다.
“방금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이 팔찌는 13년 전에 이미 개인 소장품으로 넘어갔다고 기록돼 있어요.”
“진품이라면 100억도 싼 거예요. 어쨌든 이런 물건은 소장 가치가 실제보다 훨씬 높을 거예요.”
대부분 사람은 이것이 진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도록 주최 측에서 꾸민 자작극이거나 혹은 감정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거로 추측했다.
사실 진태웅도 놀랐다.
이 팔찌는 오성후가 선물한 건데 이 늙은이가 이런 귀중한 물건을 스스럼없이 넘겨줄 줄 생각지도 못했다.
앞쪽에 앉은 신우빈과 손윤서도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