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장

아주 넓고도 아담한 큰 룸에서 나는 익숙한 몇 사람을 보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인물들이!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던 나는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목구빈의 분부를 떠올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짱을 꽉 끼고 있었다.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인사를 건네왔다. “어머, 우리 하준 대표님이 여성분을 데리고 나타난 건 처음이네. 하준아, 이리 와봐.” 장 아저씨는 중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이 몸에 딱 맞았다. 목구빈은 나를 데리고 공손히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분은 제 여자친구인 유상미라고 해요.” 그 말에 룸은 삽시에 고요해졌다. 차를 따르던 직원마저 입을 떡 벌리고 그를 돌아보았다. 손이 굳어진 나는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대로 공개한다고? 어딘가 이상한데? 이거 꿈 아닌가? 환청이 들린 거지... 목마저 뻣뻣해진 나는 목구빈을 느릿느릿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워낙 키가 훤칠한 터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마침 그의 옆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껄껄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이런 경사가 있나! 구빈아, 너도 참. 진작에 연애를 했어야 했는데... 이분은...” 멍해 있던 나는 겨우 제대로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목구빈의 말투를 따라 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유상미라고 합니다. 상미라고 불려주시면 되세요.” 장 아저씨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기질도 좋고 외모도 상당하네! 구빈이랑 잘 어울려.” 나는 수줍게 미소를 보였다. 장 아저씨의 농담으로 인해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다시 나누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목구빈은 그렇게 하나둘씩 소개시켜 주었다. 다들 나이가 드신 분이다 보니 목구빈을 구빈이라 칭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나한테로 쏟아지는 시선들도 자애로웠고 말이다. 게다가 지난번에 뵀었던 상공회의소 회장님도 계셨다. 그는 우리가 같이 걸어오는 걸 예상했다는